[MT리포트]'장하성펀드'부터 '플랫폼'까지…한국 행동주의 계보는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 2018.08.31 04:00

[진화하는 한국형 주주행동주의]②2006년 태동 후 명맥 이어져…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후 본격화 전망

편집자주 | 자본시장에 '행동주의' 바람이 분다. 기관투자자가 투자한 기업에 주주권리를 적극 개진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자본시장에도 주주 행동주의 싹이 트고 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사례를 통해 한국형 주주 행동주의의 의미와 방향을 짚어본다.


지난 2006년 8월, 대한화섬 주가가 6일 만에 75% 급등했다. 7만5000원하던 주가가 단숨에 13만1000원이 됐다. 태광산업 주가도 49만9000에서 82만2000원으로 65% 뛰었다. '장하성펀드'가 매입했다는 소식만으로 매수 주문이 쏟아졌다.

당시 '장하성펀드 편입 가능주'라는 소문이 돌면 특별한 이유 없이 주가가 치솟곤 했다. 증권사들은 장하성펀드가 매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을 골라 경쟁적으로 보고서를 냈다.

◇토종 행동주의펀드 1호 '장하성펀드'=국내 최초 주주 행동주의(액티비즘) 펀드를 표방한 장하성펀드 열풍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소버린·헤르메스·칼아이칸 등 외국계 자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주주 행동주의의 한국형 모델이라는 점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라자드자산운용이 내놓은 한국지배구조펀드에 당시 소액주주 운동을 벌였던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가 투자 고문을 맡으면서 화제가 됐다. 태광산업 대표이사 해임 소송 등 적극적인 행동도 눈길을 끌었다.

6억달러로 출발한 이 펀드는 2008년 초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으로부터 1억달러 투자도 받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으로 주가가 급락하고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면서 2008년 40% 이상 손실을 봤다. 이후 수익률이 회복됐지만 2011년 다시 20% 가까운 손실을 냈고 2012년 보유주식을 모두 유동화한 뒤 청산했다.

◇다시 싹 튼 행동주의…펀드 규모 아쉬워=장하성펀드 후 잠잠했던 한국형 주주행동주의 펀드는 2016년말 다시 움직임이 포착됐다. 라임자산운용이 국내 민간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와 손잡고 '라임-서스틴데모크라시' 사모펀드를 선보였다. 다만 투자금액이 적어 의미있는 행동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펀드는 주로 인적분할, 주주환원 등 지배구조 개선이 예상되는 종목에 투자해 수익을 올렸다.

2017년에는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이 사모펀드 '행동매주식전문투자형펀드'를 내놓고 적극적인 행동주의에 나섰다. 펀드가 투자한 현대홈쇼핑, 아스트라BX 등에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했다. 현대홈쇼핑에는 케이블방송 계열사인 HCN 지분 매입이 주가를 훼손했다며 주주 환원정책을 강화하라고 압박했다. 과도한 현금성 자산이 자기자본이익률(ROE)를 떨어뜨렸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머스트자산운용은 지난해 7월 화장품 브랜드 ‘미샤’로 잘 알려진 에이블씨엔씨에 유상증자 목적을 공개질의하는 한편 법원에 신주 발행을 금지해 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했다. 이 때문에 에이블씨엔씨 유상증자 일정이 변경되기도 했다. 당시 머스트자산운용은 "에이블씨엔씨를 인수한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PE)가 주주가치가 훼손될 정도로 대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 공시를 했는데 그 목적을 이해할 수 없다"며 "지분을 추가로 모아 자진 상장폐지하려는 것인지, 경쟁사와 합병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높아진 기관투자자 목소리…행동주의 확산될까=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서 주주 행동주의는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 플랫폼파트너스자산운용과 KB자산운용이 대표적이다.

KB자산운용은 지난 3월 주주관여 활동에 기반한 행동주의 전략을 콘셉트로 'KB주주가치포커스펀드'를 선보였다. 펀드 출시에 앞서 1월 컴투스를 대상으로 ROE(자기자본이익률) 하락에 대한 회사 입장을 질의하는 등 적극적인 주주행동주의에 돌입했다. 그 결과 컴투스는 10~15% 배당성향을 유지하는 동시에 분기배당을 실시하기로 했다. 지난 5월에는 골프존이 적자 사업부(조이마루)를 인수하기로 승인한 건에 대해 취소 소송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행동주의 펀드는 글로벌 펀드에 비해 영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최소 5% 지분이 필요한데 펀드 규모가 작아 강력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울러 소버린의 SK 경영권 공격(2004년), 칼 아이칸의 KT&G 경영개입 시도(2005년), 앨리엇의 삼성물산(2015년), 현대차(2018년) 갈등이 부각되면서 '주주행동주의=기업경영 방해꾼'이라는 인식이 확산 됐는데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주주행동주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라면서도 "절대적으로 옳은 지배구조라는 게 있을 수 없는데 행동주의 펀드는 그들의 잣대만 옳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정부 정책 흐름에 맞춰 주주행동주의가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변화한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 분위기가 주주행동주의에 우호적이니까 더 기업을 압박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주주 혼내기 차원이 아닌 기업과 주주 공동의 이익을 꾀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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