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人道)가 '주차장'…과태료 23년째 4만원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 2018.08.22 05:30

모호한 신고 기준에 저렴한 과태료까지…불법 주정차 단속 실효성 높여야

보행자 도로 위에 주차돼 있는 차량들의 모습./사진=박가영 기자

인도(人道)를 점거한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불편을 호소하는 보행자가 늘고 있다. 정부가 신고방법을 간편화하는 등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이 20세 이상 보행자 127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생활도로 보행환경 실태’ 조사에 따르면 보행 중 느끼는 교통사고 위험 원인은 ‘자동차’가 40.1%로 가장 많았다. 보행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에 대한 해소방안으로는 ‘불법 주정차 단속 후 안전한 보행 공간 확충’(27.8%)이 1위에 올랐다.

머니투데이가 20일 서울 서대문구 인도 일대를 살펴본 결과 보행자 통행을 방해하는 불법 주정차 차량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날 서대문구 한 대로변에는 승용차 2대가 나란히 보행자 도로 위에 주차돼 있었다. 가로수가 있는 인도에 차량이 주차돼 있어 보행 공간이 비좁아진 상태.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잠시 기다리거나 차도로 내려가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모씨(23)는 “학교 가는 길에 인도에 주차된 차량을 대여섯 대쯤 본다”며 “사람이 지나다니는 인도에 버젓이 주차해 놓는 비양심적인 차주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불법 주정차 근절을 위해 지속적인 단속에 나서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2011년 ‘생활불편신고’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주차 위반 장소와 일시, 사진과 동영상 등을 첨부해 언제 어디서나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도 2013년부터 불법 주정차 등 교통법규 위반 신고 접수를 위해 ‘서울스마트불편신고’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단속에도 불구하고 불법 주정차 차량은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시청 교통지도과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주정차 단속 건수는 333만7118건으로 2015년(294만9895건) 보다 약 13% 증가했다.

◇들쭉날쭉한 신고 기준에 과태료는 고작 4만원?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캡처

불법 주정차 단속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모호한 신고 기준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전국 어디서나 불법 주정차 신고가 가능하지만 지자체 별로 접수 기준이 달라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생활불편신고 등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불법 주정차 차량을 신고하기 위해서는 신고 차량을 촬영한 사진 2매 또는 30초 이상 촬영한 동영상이 필요하다. 사진의 경우 시차를 두고 2장을 촬영해야 하는데 지자체마다 그 기준이 1분에서 10분까지로 상이하다.

서울시는 불법 주정차 차량 신고 시 1분 이상 시차를 두고 찍은 사진을 2매 이상 등록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인천시 부평구는 5분 이상, 연수구는 10분 이상 불법 주정차 돼 있는 차량이 신고 대상이다.

불법 주정차 단속 기준은 지자체 별로 다르다. 서울시와 인천시 연수구는 각각 1분,10분을 단손 기준으로 두고 있다. /사진=120다산콜센터 상담 내역, 인천시 연수구 홈페이지 화면 캡처

고양시 일산동구도 첫 번째 사진과 두 번째 사진의 촬영 시차가 10분 이상 돼야한다고 고지하고 있다. 일산동구청 교통행정과 관계자는 “지자체마다 단속 기준이 모두 다르다”며 “고양시는 시민 촬영 신고뿐만 아니라 고정형 카메라 등 단속도 10분 시차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낮은 수준 과태료도 불법 주정차 근절의 걸림돌이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32조 1항은 교차로·횡단보도·건널목이나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의 보도에는 차량을 정차하거나 주차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 불법 주정차 과태료는 승용차 기준 4만원. 1995년 도로교통법 시행령이 개정된 이후 23년째 유지되고 있다. 심지어 납부 기간에 내면 20% 감경돼 3만2000원만 내면 된다.

우리나라의 불법 주정차 과태료는 해외와 비교해도 매우 낮은 편이다. 일본은 불법 주정차 과태료가 2만5000엔, 한화로 약 25만원 수준이다. 호주는 약 38만원으로 우리나라의 10배에 달한다.

불법 주정차 과태료가 가볍다 보니 주차비가 비싼 도심 지역에서는 주차비 대신 과태료를 내는 게 낫다는 말도 나온다. 서울 도심의 민영주차장의 경우 10분당 주차비가 1000원을 훌쩍 넘기 때문. 실제로 지난해 주차료가 가장 비싼 강남구의 불법 주정차 단속 건수는 42만5694건으로 다른 구에 비해 2~6배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과태료 부담이 낮아 '납부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다”며 “불법 주정차 처벌 수준을 높이고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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