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디지털 대면과 문화지체현상

머니투데이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 2018.08.21 05:00

[기고]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원격진료, 의약품 택배 배송, 의약품 자동판매기, 안경과 콘텍트렌즈 온라인 판매는 우리나라 현행법 상에선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논의된 규제혁신 대상들이지만 언제쯤 우리 국민들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지도 예상하기 힘들다.

미국, 일본, 중국 등 많은 국가에서 활발하게 서비스들을 우리는 왜 활용할 수 없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러한 규제를 옹호하는 의견에는 항상 공통된 단어가 존재한다. 바로 ‘대면’ 이란 단어다. 사이버-물리시스템, 디지털 트윈이 논의되는 디지털 시대에 소비자는 의사, 약사, 안경사와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서비스를 받거나 거래했을 때만 대면으로 인정한다. 스마트폰이나 영상통화 장치, 동영상 등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은 대면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세계 어느 국가 국민보다 디지털 세계에 익숙하지만, 관련 단체들은 아날로그 시대에 갇혀 디지털 세계의 진입을 거부하고 있는 듯 하다.

대표적 해외 사례만 살펴보자. 일본은 2015년 3월 관련 고시를 개정해 만성질환 이외 진찰에도 원격진료가 가능해졌으며, 선대면진료 조건도 삭제했다. 미국 온라인 약국인 필팩과 캡슐은 디지털 처방전 등을 활용해 환자에게 약을 배송하고 문자와 인터넷 상담서비스도 제공한다. 워비파커의 홈트라이온 서비스는 소비자에게 5개 안경을 배송해 원하는 안경 디자인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고, 안경처방전을 함께 보내면 안경을 제작해 배송해 준다. 콘택트렌즈 인터넷 주문과 의약품 자동판매기도 해외에서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미국 사회학자 윌리엄 필딩 오그번은 1922년 발간한 저서 사회변동론에서 문화지체 현상을 정의했다. 법, 제도, 정치 등 비물질적문화가 기술발전 속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뒤쳐져 발생하는 사회부조화를 의미한다. 아쉽게도 위의 분야들이 우리나라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을 가로막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대표적 분야들이다. 시장과 소비자는 기술과 서비스 수용성을 판단하고 선택할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어 우리나라는 어느 국가보다도 문화지체 현상이 심각하게 겪고 있다.


실제로 만성질환이나 정기검진이 필요한 환자들도 기본적인 검사, 의사와의 짧은 면담, 약을 구매하는 과정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 노력이 필요하다. 고령층과 장애인, 어린이 등 보호자가 동행해야 하는 경우에는 보호자의 비용과 시간 소비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보호자가 직장인이고 환자와 함께 병원을 매월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면 이동시간 등을 합쳐 일년에 최소 12번의 연차휴가를 사용할 정도다.

이렇듯 시대 변화와 기술 발전을 따르지 못하는 대면의 정의는 소비자의 불편함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소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규제와 기득권의 반대에 막혀있는 신산업들은 시장잠재력과 고용, 4차 산업혁명 기술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실현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경제적 논의를 넘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대면의 의미, 그리고 보다 구체적인 국민 편익 관점에서 이해당사자들이 구체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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