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분 연습 끝에 ‘네쑨 도르마’ 부른 천재 ‘솔의 대부’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8.08.17 15:37

타고난 가창력으로 60년 미국 음악사 흔든 아레사 프랭클린…16일 췌장암으로 별세, 주술같은 가창력으로 흑인 인권 신장에도 기여

【뉴욕=AP/뉴시스】'솔(soul)의 여왕'으로 불리며 '리스펙트'(Respec)등 다수의 히트곡으로 인기를 끈 미국의 여가수 아레사 프랭클린이 1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76세. 사진은 2012년 1월14일 촬영된 것으로, 워싱턴의 한 극장에서 공연하는 모습.

그를 ‘솔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건 결례다. 그는 ‘솔의 대부’였다. 여 가수 중 솔(Soul)이라는 장르를 가장 잘 부른 것이 아니라, 흑인 음악의 본질인 이 장르를 뼛속까지 안고 가장 잘 이해하고 해석한 진정한 대부였다.

16일(현지시간) 췌장암을 받고 향년 76세 일기로 떠난 아레사 프랭클린은 지난 해 2월 모든 콘서트 일정을 취소하면서부터 서서히 생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로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감을 잡긴 어려웠지만, 120kg에 달하던 체중이 최근 40kg 이하로 줄면서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프랭클린은 1960년 데뷔 이래 지금까지 현재 유행하는 흑인음악의 장르들, 리듬앤블루스(R&B), 솔의 롤 모델로 자리할 만큼 가창의 교과서였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은 물론이고, 가창이 곧 주술로 변환될 만큼 목소리로 홀리는 마법의 표현력과 해석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1998년 그래미 시상식장.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몸이 안 좋아 불참하자, 프랭클린이 ‘대타’로 나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불렀다. 그것도 연습할 시간이 없어 단 8분의 준비 끝에 파바로티의 키로 노래했다. 시상식장 객석은 물론, TV 시청자까지 이 순간의 가창에 몸이 얼어붙었다.

솔은 한국의 한(恨)의 정서와 비슷하다. 백인에게 차별받은 흑인의 분노와 고통, 못 가진 자의 차별과 설움이 목소리에 알알이 배어있다. 내재한 슬픔을 포장하기 위해 밝은 리듬을 채운 건 솔의 이중적 특징이기도 하다.

프랭클린은 밝은 리듬의 곡을 부르거나, 담담한 어조로 노래하거나, 슬픔 자체를 읽어낼 때 모두 듣는 이에게 숨겨진 ‘잿빛 정서’의 모든 것을 은연히 알려준다. 어떤 힘 있는 정치적 표현보다 강한 메시지가 노랫말과 가창에 들어있었던 셈이다.

1967년 디트로이트는 흑인 폭동으로 비극의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정부와 흑인이 대치하는 상황은 곧 인종차별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시작이었고, 이 중심에 프랭클린의 ‘소리’가 있었다.

오티스 레딩이 이미 부른 ‘리스펙트’(Respect·존경)를 재해석한 프랭클린의 버전은 흑인을 하나로 모으는 단결의 합창으로 쉽게 수렴됐다. 흑인에 대한 백인의 존경을 요구하는 그의 노래는 흑인시위대의 찬가로 떠올랐고, 결국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까지 거머쥐었다.


오리지널 가창자 오티스 레딩이 나중에 프랭클린의 곡을 듣고 “저 여자가 내 곡을 빼앗아갔다”며 ‘존경심'을 허탈로 표현한 일화는 유명하다.

솔을 하기 위해선 아레사 프랭클린이라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할 만큼 그가 드리운 이정표는 깊고 넓다.

2010년 음악전문잡지 ‘롤링스톤’이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가수 톱10’ 명단에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그래미상 18차례 수상, 빌보드 R&B 차트 1위 곡 최다 보유(20곡) 등의 기록도 갖고 있다.

프랭클린은 침례교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커 어릴 때부터 가스펠과 친숙했다. 복음성가 순회공연을 통해 쌓은 영혼을 달래는 목소리 못지않게 스피커를 터지게 할 만큼 폭발적인 가창력은 그의 전매특허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옛날 노래들을 다시 녹음해 출시한 ‘새로운 나’(A Brand New Me)는 마지막 앨범으로 남았다.

‘아이 세이 어 리틀 프레이어’(I say a little prayer)에서 허밍 하나에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 미학이 벌써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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