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조병구)가 지난 14일 내린 안 전 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은 수행비서 김지은씨(33)와의 위력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안 전 지사가 위력을 상시적·일반적으로 행사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재판부는 "유력 정치인·도지사라는 지위와 그 비서의 관계는 위력에 해당한다"면서도 "피고인이 위력을 일반적으로 행사해 왔다거나 이를 남용해 '위력의 존재' 자체로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볼만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검찰과 김씨는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고 여성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 선고는 올해 초부터 크게 일었던 미투 운동 이후 첫 주요 판결로 그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국내 미투 운동은 문화계·학계 등을 거쳐 3월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안 전 지사에 대한 김씨의 폭로 이어졌다.
김씨 법률대리인들과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이번 판결은 업무상 위력에 대한 판단을 엄격하고 좁게 해석했다"며 "위력의 인정범위를 넓혀가는 최근 판결 동향이나 피해자의 자발적이고 진지한 동의 없음을 성폭력 범죄의 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선진국의 추세와도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판결이 미투 운동을 통해 제기된 유사한 권력형 성범죄에 '면죄부'를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공대위는 "온갖 유형·무형력을 행사하며 괴롭히는 상사들은 이제 '면허'를 갖게 된 것인가"라며 "성폭력으로 고발되지 않고, 고발되더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지 매뉴얼을 갖게 된 것인가"라고 재판부에 되물었다.
여성단체들은 추후 재판에서는 안 전 지사의 죄가 인정되도록 지속해 사법부를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불꽃페미액션 관계자는 "2심과 대법원까지 계속해서 거리에 나가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에 진행 중이던 여성주의(페미니즘) 운동과 이번 판결이 맞물리며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와 워마드 운영자 수사 등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적하던 여성운동에 이번 안 전 지사에 대한 무죄 선고는 기름을 붓는 격이기 때문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판결은 우리 사법부가 대중적인 정서와 여성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가 매우 낮다는 걸 증명한 것"이라면서도 "무죄 판결이 또 다른 사회적 논의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 교수는 "일부 워마드를 중심으로 과격 양상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지만 일부에 그칠 것"이라며 "여성 인권 보호와 개혁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번 판결을 계기로 도덕적 비난과 법적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판부는 김씨 진술이 안 전 지사의 혐의를 입증할만큼 신빙성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A변호사는 "원치 않는 성관계가 반복적으로 이뤄졌는데도 명확한 거절 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재판부가 안 전 지사가 받을 사회적 비난과 형사 책임을 별개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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