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 '탐구생활' 책, 그게 뭐예요?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 2018.08.12 06:00

[방학 탐구생활-①] 초등학교, 방학 숙제는 어떻게 달라졌나

편집자주 |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탐구생활은 약 20년 전까지 초등학생 방학 과제물로 배포되던 학습교재다./사진=서울시교육청 블로그
#“오늘 밀린 일기 다 안 쓰면 내일 정현이네 놀러 못 가. 알았어?”. 여름방학 끝나기 일주일 전,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울상 짓고 책상에 앉아 일기장을 폈다. 마지막 일기가 8월 9일이니까… 일기 안 쓴지 대충 2주 정도 됐나 보다. 방학 첫날 그려서 붙여놓은 생활계획표엔 저녁 8시에 일기를 쓰겠다고 적어놨는데, 역시나 못 지켰다. 가방 속 알림장을 꺼내 다시 보니 일기 말고도 해야 할 게 많다. 시간 맞춰서 들어야 하는 교육방송도 빼먹은 게 많고 가족신문도 만들어야 한다. 탐구생활은 아직 펴보지도 않았다. 방학은 쉬라고 만든 것 같은데 숙제는 왜 이렇게 많은 걸까? 그냥 놀기만 하는 거면 참 좋을 텐데.


초등학교 시절, 개학을 코앞에 두고 밀린 방학 숙제를 부랴부랴 했던 경험. 방학을 회상할 때면 2030세대가 자연스레 떠올리는 기억 중 하나일 것이다. 탐구생활, 독후감, 일기, 견학보고서 등 적지 않은 숙제들은 방학마다 학생들을 괴롭히곤 했다.

학생들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던 초등학교 방학 숙제가 이젠 옛 이야기가 됐다. 최근에는 학생들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방학 숙제를 대폭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추세여서다. 서울시교육청은 초등 1·2학년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이나 부모 도움이 필수인 숙제를 없애도록 권고하는 등 방학 동안 학생들 학업 부담을 줄이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탐구생활도 일기 숙제도 없다…"이번 방학 숙제는 친구 집에서 자고 오기예요"

초등학교 방학 숙제의 가장 큰 변화는 ‘탐구생활’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탐구생활은 한국교육개발원이 개발해 초등학생 방학 때 과제물로 배포하던 학습교재다. 1979년 여름방학에 처음 발간돼 약 20년간 방학 숙제의 대명사로 통했다. 교통안전, 환경보존 등 기본적인 사항부터 에너지, 자연의 신비 등 과학 관련 내용까지 담겨 있었다. 보통 일별로 학습하도록 구성돼 라디오, TV 등 방송에 맞춰 진도를 나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탐구생활은 방학 숙제를 학생들에게 일괄적으로 내줘 부담을 준다는 지적과 현장학습 위주로 개선된 교육정책 때문에 1997년을 끝으로 사라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1999년까지 방학 학습 교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직장인 이모씨(29)는 “탐구생활이 사라진 지 이렇게 오래된 줄 몰랐다”며 “방학 숙제의 상징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용도 많고 어려운 과제도 종종 있어 학생들의 부담이 컸던 건 사실이다”고 말했다.

약 20년 전 기자가 초등학교 방학 숙제로 제출했던 일기와 견학기록문./사진=박가영 기자

일기 쓰기에 대한 부담 역시 줄었다. 일기 검사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논란이 일면서 교사가 일기장을 검사하는 관행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 지금은 학교마다 담임교사 재량에 따라 일기 쓰기를 지도하고 있다. 방학 동안 일기를 주 2~3회 쓰는 것이 숙제인 학교도 있지만 권장 사항이거나 썼다는 사실만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초등학교에선 일기 쓰기가 방학 필수 과제였다. 담임 교사는 일기 쓰기 숙제를 확인하며 학생들이 틀린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빨간펜으로 수정해주기도 하고, 내용에 간단한 코멘트를 적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등학생 일기장 검사는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며 교육부에 일기 검사를 개선하라는 권고를 내리며 일기 검사도 옛날이야기가 됐다.

전북 A 초등학교 교사 전모씨(27)는 “전북에선 일기 검사가 아동 인권을 침해한다는 민원이 들어와 일기 검사를 하지 않는다”며 “작년까지만 해도 방학 동안 일기 주 2회 작성하기 숙제를 내줬는데 올해부터는 일기 쓰기 교육만 진행하고 따로 숙제를 내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형식적인 방학 숙제의 빈자리는 경험 위주의 활동들로 채워진다. 광주 한 초등학교에선 ‘친구 집에서 자기’를 방학 숙제로 내줘 이목을 끌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매일 줄넘기 30개 하기’ ‘가족과 여행 가기’ 등 방학 숙제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도 한다.

김한관 임성초등학교 교장(58)은 “문제집을 풀고 독후감을 쓰는 등 무의미한 숙제는 거의 사라졌다”며 “부모님 등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하는 숙제보다 운동, 독서 등 학생의 몸과 마음을 단련할 수 있는 숙제를 내준다. 물론 이 숙제들도 별도 검사는 없다”고 전했다.

베스트 클릭

  1. 1 23억 갚으면 '10억 빚' 또…"더는 못 갚아줘" 박세리, 이유 있었다
  2. 2 "이게 살짝 난 상처인가요?" 아들 얼굴 본 아버지 '분통'
  3. 3 산소마스크 내려오고 승객들 코피 쏟고…대만행 대한항공편 긴급 회항
  4. 4 '처형 강제추행' 혐의 유영재, 검찰 송치…선우은숙 측 녹취록 인정
  5. 5 절반이나 남아 생산라인 세웠다…재고 쌓인 전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