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짜 판사, 가짜 재판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 2018.08.08 04:00

[the L]

“가짜 판사 박○○! 박○○를 구속하라!”

지난해 서초동 법원 청사 근처에서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던 한 여성이 있었다. 법원을 드나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한다. 이 여성의 주장은 이랬다. 박모 부장판사가 자기 주장을 듣지도 않고 ‘가짜 재판’을 했다는 거다. 법원 주변에는 늘 이런 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그래도 판사가 재판을 그렇게 했겠느냐’는 믿음 때문이다.

김수천 전 부장판사 사건 때도 그랬다. 김 전 부장판사가 정운호씨 돈을 받고 재판했다는 의혹으로 구속되자 대법원은 “어떤 채찍도 달게 받겠다”며 엎드렸다.
국민들은 혀를 차면서도 대법원에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판사는 못 믿어도 재판은 믿어야 하지 않느냐는 신뢰 때문이었다. 법조비리, 그 중에서도 판사들의 비리가 줄을 잇는데도 재판 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신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사법농단’ 문건이 공개되면서 이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문건에 손댄 판사들은 재판을 ‘상고법원 딜’을 위한 장기 말로 여겼다. 그들은 이 불순한 발상을 버젓이 문서로 정리해 보관했다. 문서가 세상에 드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대법원을 향한 수사는 있을 수 없다는 착각과 오만함이 엿보인다.


문건 작성의 책임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은 “누가 지시했냐”는 취재진 질문에 대답 대신 뜀박질을 했다. 국회에서는 일부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하자는 법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은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대로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검찰 수사를 가로막았다. 어느 국민이 이 판단을 신뢰할까?

지금 대법원은 검찰 수사 외에 다른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 사건과 관련이 있든 없든 판사라면 누구나 재판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재판이 있어야 판사도 있는 법이다.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심판하고,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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