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억원짜리 수정액 발명한 '오타쟁이' 싱글맘

머니투데이 구유나 기자 | 2018.07.24 16:31

타자가 주업무이던 그레이엄, 1950년대 초 개인용도로 템페라물감·염료 섞어 개발

붓으로 바르는 방식의 수정액 '리퀴드 페이퍼'.
'화이트'(수정액) 덕분에 사람들은 실수를 두려워 않고 펜으로 맘껏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화이트를 처음 발명한 사람도 그랬다.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게 두려웠던 싱글맘은 실수로부터 보석 같은 기회를 발견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공로를 충분히 평가받지 못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오버룩드'(overlooked·주목받지 못한) 코너에서 화이트 발명가 벳 그레이엄(Bette Graham)을 소개했다.

1954년, 그레이엄은 상업화가이자 은행비서였다. 이혼 후 그림 일만으로는 혼자 아들을 키우기 힘들었기 때문에 미국 텍사스 은행에 비서로 취직해 월 300달러(약 34만원)을 벌었다. 그의 주 업무는 타자기를 치는 것이었지만 그가 잘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는 자주 오탈자를 냈고 직장 상사는 한 번만 더 실수하면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 당시 타자기로 찍어낸 오타를 완벽하게 수정하는 건 불가능했다. 지우개로 지우면 종이에 온통 번졌다. 그래서 그는 한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잘못 그린 부분을 물감으로 덮어버린 것처럼 활자를 종이와 같은 하얀색으로 덮어버리자는 것.

그레이엄은 부엌에 있는 믹서기로 하얀색 템페라 물감에 회사 종이 색깔에 염료를 섞어 최초의 수정액을 만들었다. 그는 액체를 작은 매니큐어 병에 옮겨 담아 회사 책상 서랍 속에 숨기고 몰래 사용했다. 하지만 곧 동료 비서들에게 발각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펜 형태의 '리퀴드 페이퍼' 수정액.
그레이엄은 본격적으로 수정액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는 수정액이 더 빨리 마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고 잠재적 구매자에게 샘플을 동봉해 편지를 보냈다. 주말에는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해 도매업자 등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또 아들과 그의 친구들을 시급 1달러에 고용해 붓끝을 자르거나 병에 수정액을 채우는 일을 시켰다.

그런데 부업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 서류에 자신이 앞으로 세우게 될 회사의 임시 회사명인 '미스테이크 아웃'으로 서명한 것. 이 일로 그는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지만 오히려 화이트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레이엄은 1958년에는 '리퀴드 페이퍼 컴퍼니'(Liquid Paper Company)라는 정식 회사를 설립하고 제품 특허를 취득했다. 제너럴 일렉트릭(GE) 등 대기업으로부터 납품 요청을 받기 시작하면서 1970년대 중반에는 연간 2500만병을 생산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말년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1975년 이혼한 두 번째 남편이 회사 이사진과 담합해 그레이엄에게서 경영권과 특허권을 박탈한 것. 그레이엄은 경영권 다툼 끝에 특허권을 회복하는 대가로 1979년 질레트에 기업을 4750만달러(약 540억원)에 매각했으나 6개월 뒤인 1980년 5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산은 유언에 따라 여성단체에 기부됐다.

2000년 이 회사는 생활용품 전문기업인 뉴웰 러버메이드에 재매각됐다. 화이트 제품은 '리퀴드 페이퍼' 또는 '페이퍼메이트'(Papermate)라는 브랜드명으로 판매되고 있다.

베스트 클릭

  1. 1 "유영재, 선우은숙 친언니 성폭행 직전까지"…증거도 제출
  2. 2 장윤정♥도경완, 3년 만 70억 차익…'나인원한남' 120억에 팔아
  3. 3 차 빼달라는 여성 폭행한 보디빌더…탄원서 75장 내며 "한 번만 기회를"
  4. 4 "390만 가구, 평균 109만원 줍니다"…자녀장려금 신청하세요
  5. 5 갑자기 '쾅', 피 냄새 진동…"대리기사가 로드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