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어디에요?” 물음에 '태도 불량' 라이프가드의 ‘숨겨진 이유’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8.07.25 06:12

[인터뷰] 올해 캐리비안 베이에서 17년째 근무 중인 유제광 선임 라이프가드…“6세 아이 구조로 생명 안전 지킴이 열정 커져”

유제광 선임 라이프가드. /사진제공=에버랜드
폭염에 자주 찾는 물놀이 시설에서 라이프가드의 존재는 약이자 독이다. 위험 상황에서 구제해주는 든든한 수호신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유를 제한하는 호루라기 소리에는 불편한 존재로 느껴지기 십상이다.

간혹 아찔한 순간에 생명을 건져도 감사 인사받기가 하늘의 별따기. 실제 ‘고마운 사람’을 뽑는 설문조사에서도 라이프가드는 순위 밖에 있다.

무엇보다 선글라스에 호루라기 착용하고 서 있는 ‘폼 잡는’ 듯한 태도에선 라이프가드의 역할 자체를 의심하기도 한다.

물놀이 시설에서 흘린 땀만큼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이가 라이프가드다. ‘폼생폼사’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그들의 숨겨진 실상은 어떨까.

국내 최초 워터파크인 캐리비안 베이에서 올해 17년째 근무하는 유제광(39) 선임 라이프가드는 “나 때문에 한 명 살았고, 내가 잘 지켜봐서 아무 일 없었다는 자신에 대한 위로와 작은 보람을 매일 느낀다”며 “각종 오해와 불신 속에서도 이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유 선임은 2001년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실내 파도풀에서 아르바이트한 지 며칠 되지 않아 그의 눈엔 물 중간쯤 눈을 뜬 채 잠겨있는 6세 여아가 들어왔다. 물에 빠진 건지 애매한 상황에서 그는 무작정 뛰어들어 아이를 건져냈다. 아이를 살렸다는 뿌듯함을 계기로 그는 전문 라이프가드의 길을 걸었다.

2001년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17년째 수상안전요원으로 일하는 유제광 선임 라이프가드. 그는 "물이 아무리 앝아도 물이 있는 곳은 모두 위험하다는 인식이 라이프가드에겐 중요하다"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를 마치고 '사람 하나 구했다'는 내게 주는 작은 위로와 보람이 이 일을 하는 기쁨"이라고 말했다. /용인(경기)=김고금평 기자

“그때 비로소 알았어요. 라이프가드의 가장 중요한 일은 ‘스캐닝’이라는 걸요. 수심이 얕든 깊든 중요한 건 사람이 있는 곳 모두를 구석구석 살펴야 한다는 거예요. 물이 있는 곳은 어디든 위험하다는 뻔한 인식이 라이프가드에겐 누구보다 절실하거든요.”


그가 보는 물에 빠진 사람의 유형은 3가지. 뜨거나 가라앉거나 물 중간에 갇히거나다. 물에 빠진 사람의 90%는 대개 눈을 감지만, 눈 감지 않은 10%는 구조 여부가 애매하다.

유 선임은 “그 아이는 10% 해당하는 케이스여서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부지불식간 익사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며 “가끔 패턴화하는 내 일을 새롭게 잡아주는 열정은 그 아이와의 기억”이라고 했다.

세심한 관찰 때문에 오해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손님들은 “화장실 어디에요?”라고 묻기 일쑤인데, 라이프가드들은 대부분 손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무표정으로 ‘간단히’ 대답한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자기 구역의 관찰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

“우리가 믿는 바와 손님이 믿는 바가 다른 게 늘 딜레마죠. 하지만 집중 관찰을 위해 그런 오해도 감수하고 가야 해요. 손님 얼굴 안 보고 대충 대답하는 태도 뒤에 숨은 진짜 이유를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죠.”

캐리비안 베이에서 17년재 근무하는 유제광 선임 라이프가드. /사진제공=에버랜드

유 선임은 수상안전요원 자격증과 함께 수상안전 구조 전문회사 E&A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해 현재 1년에 300명에 이르는 라이프가드를 교육하고 있다. 스캐닝의 중요성은 물론이고 10시 이전 취침 권고 및 금주 같은 일상 지침을 강조하며 생명을 지키는 일의 엄격함을 요구하고 있다.

“아내도 겨우 물놀이하는데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는 거 아니냐고 타박해요. 하지만 생명과 관련된 일은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거든요. 라이프가드는 손님이 ‘이런 사람이 있었나?’하고 기억하지 않는 존재가 될 때, 훌륭한 임무를 수행한 존재가 돼요. 안 그러면 우리에 대한 기억은 모두 부정적으로 묘사될 뿐이죠.”

유 선임은 앞으로 수상안전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전국의 모든 물놀이 시설을 책임지는 라이프가드를 교육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시설 한 바퀴를 함께 도는 자리에서도 그는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을 뿐, 시선은 물가에서 한시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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