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노인을 위한 주택은 없다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 2018.07.25 05:14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강북구 삼양동 2층 옥탑방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63세 남자다. 인구의 14.3%에 달하는 고령층(65세 이상)엔 살짝 못 미치는 나이다. 임대 기간이 한 달이니 '깔세'라 하기도 뭐하다. 집주인 입장에선 반갑지 않은 세입자다. 서울특별시장만 아니라면 말이다.

박원순 시장의 특별한 옥탑방 세살이가 시작됐다. 한강 이남과 이북의 격차를 줄이고 대안주거모델을 찾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운동화를 신고 배낭을 맨 차림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분쟁 현장에 '현장 시장실'을 운영했던 행보를 보면 파격적이라 할 수도 없다.

오히려 박 시장의 '한 달 살기' 미션에 노령층 주거정책이 거론되지 않은 게 의아하다. 강북구는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 노인인구비율이 16.5%로 가장 높다. 송파구(10.9%)와 강남구(11.1%), 서초구(11.5%) 등 강남 3구는 노인인구비율이 가장 낮은 자치구다.

14세 이하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을 뜻하는 노령화지수는 자치구별로 차이가 더 크다. 강북구 노령화지수가 159.4에 달하는 반면, 서초구는 79.9로 그 절반 수준에 그친다. 나머지 강남 3인방인 강남과 송파도 각각 89.4와 83.4이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인지 먼저인지 헤아리긴 어렵다. 확실한 것은 강북과 강남의 지역인프라와 거주여건의 차이가 거주자들의 평균연령과 인구분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이는 일자리가 많고 살기 좋은 곳으로 몰리고 노령층은 좀처럼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강북 저층 주거밀집지 거주자 상당수는 노령층이고 주거여건도 열악하다. 옥탑방이 아닌 반지하, 스러져가는 낡은 단층 단독에 사는 경우도 많다.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저소득 고령층은 향후 돈이 될 것을 알아도 재개발사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나 금전적 여유가 많지 않다.


10년 전 60이 채 안됐던 서울 노령화지수는 110을 훌쩍 넘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 우리나라 독거노인 비율도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1%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노인 넷 중 한 명이 혼자 산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적 비용으로 주거 여건을 서둘러 개선할 수 있느냐다.

국토교통부의 '제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 수정계획'은 신혼희망타운 10만호와 청년주택 30만실 공급 등 청년·신혼부부 지원에 방점이 찍혀있다. 문재인 정부의 주거정책이 집대성된 주거복지로드맵도 사실상 청년정책이다. 서울시도 '역세권 2030 청년주택'을 선보이며 청년층 주거지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령 가구를 위한 주거정책은 죽었다. 삼양동엔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추억할 과거가 많은 고령의 이웃이 많다. 이사를 가려 해도 내 집 값만 그대로여서 집 크기를 줄여도 갈 곳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한 달은 길지 않다. 옥탑방 더위가 선의(善意)를 누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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