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을 탈환하면 한 30년 제대로 살아봅시다."
2016년 4월5일 경남 창원. 4·13 총선을 일주일 정도 앞둔 상황에서 유세를 하던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당시 창원성산 출마 후보)가 이같이 말했다. 유세장에는 문재인 대통령, 당시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와 있었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의 제20대 총선 승리를 위해 전국을 돌며 지원유세를 하고 있었는데 노 원내대표가 출마한 창원의 유세지도 특별히 찾은 것이다. 당시 노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허성무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한 후 범진보 후보로 나섰었다. 이 단일화 작업에 문 대통령이 적극 나서서 중재를 했다.
노 원내대표는 "소중하게 만들어 낸 일(단일화)이다. 이 힘을 헛되이 쓰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바치겠다"며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정권이 무너진다면 다른 곳도 아닌 이곳부터 일 것이다. 영남에서 일어나 수도권까지 가야한다"고 외쳤다.
문 대통령도 "노회찬 후보는 사실상 야권 단일후보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공동후보"라며 "우리당을 지지하시는 시민들께서는 노 후보를 우리당 후보처럼 생각하고 투표에 참여 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또 "새누리당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진보적인 경제정책을 위해 노 후보와 같은 대중노선을 걷는 진보정치인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노 원내대표의 지원유세에 나선 것은 2016년이 두 번째였다. 앞서 2014년에는 7·30재보궐선거 서울 동작을 지역구에 출마한 노 원내대표를 문 대통령이 지원했다. 당시에도 노 원내대표는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상황이었다. 문 대통령은 노 원내대표 선대위의 고문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당이 달랐음에도 수차례 손을 맞잡을 만큼, 문 대통령과 노 원내대표는 서로를 높게 쳤다.
두 정치인의 꿈은 2018년에도 진행 중인 것처럼 보였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집권 2년차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60~70%에 달하는 지지율을 유지 중이다. 노 원내대표도 문 대통령의 지원 속에 2016년 총선에서 3선에 성공한 후 진보정당의 간판으로 활동해왔다. 정의당은 최근 지지율이 10%를 넘어서며 창당 이후 최고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관계도 여전히 돈독했다. 노 원내대표는 지난해 5월19일 5당 원내대표의 일원으로 문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청와대에서 오찬회동을 가졌다. 노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책 '82년생 김지영'을, 김정숙 여사에게는 책 '밤이 선생이다'를 선물했다. 당시 노 원내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매우 유익했다. 예정시간을 40분이나 넘길 정도로 국회서도 해보지 못한 솔직한 대화를 깊이있게 나누었다"고 글을 남겼다.
"30년 동안 잘 해보자"고 했지만, 그 말을 한지 2년, 정권이 교체된지 1년 남짓한 시간 만에 노 원내대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드루킹 관련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청탁 내용은 없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다. 문 대통령은 23일 오전 11시50분 청와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방송에 나와 "힘내시라"는 취지의 국민청원에 직접 답을 할 계획이었지만, 노 원내대표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양복 상의를 채 벗기도 전에 "노회찬 의원은 당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시대에 정치를 하면서 우리 한국사회를 보다 더 진보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함께 노력을 해왔다"며 "아주 삭막한 우리 정치판에서 말의 품격을 높이는 그런 면에서도 많은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정말 가슴이 아프고 비통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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