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한건 터지면 수천억…해외에 없는 일괄구제 3가지 문제점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김진형 기자 | 2018.07.17 03:58

금감원 결정에 금융회사 이견 제시도 못해…집단소송제보다 센 '법 위의 권력'

금융감독원이 금융권에 집단소송제도보다 파급력이 큰 ‘다수 피해자 일괄구제제도’ 도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괄구제제도는 소비자가 금감원에 제기한 민원 한 건에 대한 결정을 소송 절차도 없이 유사한 사례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제도다.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데다 법 제·개정 절차 없이 금감원의 분쟁조정세칙만 개정하면 금감원장 결정만으로 도입할 수 있어 ‘법 위의 권력’으로 우려를 사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괄구제제도의 문제점은 세 가지다. 첫째, 단순한 민원 한 건에 대한 조정 결정이 금융권 전체에 수천억원에서 1조원이 넘는 보상금 지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 일괄구제제도는 금융사고나 민원이 발생하면 이를 금감원 홈페이지에 공시해 유사한 피해자의 분쟁조정 신청을 받아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일괄 상정해 한번에 구제하는 제도다. 분쟁조정을 신청한 소비자만 구제 대상이다.

하지만 일괄구제제도의 첫 사례가 된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과소지급 논란을 보면 금감원은 소비자의 분쟁조정 신청이 없는데도 삼성생명에 대한 분조위 결정을 근거로 유사한 약관을 가진 전체 생명보험사에 공문을 보내 즉시연금 추가 지급을 종용하고 있다.

둘째, 분조위 결정에 금융회사가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분조위 결정은 민원인과 금융회사가 모두 수용하면 법원의 화해 결정과 같은 구속력을 갖지만 어느 한쪽이라도 수용하지 않으면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에 2000만원 이하의 소액 분쟁에 대해선 분조위 결정을 금융회사가 무조건 수용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반영할 방침이다.


하지만 건당 2000만원이 넘는 분쟁에 대해서도 금융회사가 분쟁조정위 결정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하긴 어렵다. 과거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태만 봐도 법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에 대해선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금감원은 법원의 결정과 관계없이 보험사에 검사와 제재 권한을 동원해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까지 다 지급하도록 강제했다.

이미 금감원은 금융회사가 분조위 결정에 따른 일괄구제 방침에 불복할 경우 검사를 통해 엄중 제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소지급 즉시연금을 다 지급하지 않는 보험사는 검사에 착수해 기초서류(약관) 위반으로 제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분조위 결정을 거부하면 금감원이 검사 등을 통해 중징계를 내릴 수 있어 분조위 결정은 법 위에 있는 결정인 셈”이라고 말했다.

셋째, 일괄구제제도는 해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소송 절차를 거쳐야 하는 집단소송제도와 달리 민원 한 건에 대한 금융당국의 결정이 엄격한 법리 다툼도 없이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서다. 분조위는 금융상품의 약관이 모호할 경우 '약관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에 따라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판단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괄구제제도를 어디에서 벤치마킹했느냐는 질문에 “영국 등 일부 국가에 도입돼 있지만 활성화돼 있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감원의 일괄구제제도 도입 방침에 따라 해외 사례를 찾아봤지만 민원 조정 결과로 유사 사례를 전부 구제하는 사례는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베스트 클릭

  1. 1 나훈아 '김정은 돼지' 발언에 악플 900개…전여옥 "틀린 말 있나요?"
  2. 2 남편·친모 눈 바늘로 찌르고 죽인 사이코패스…24년만 얼굴 공개
  3. 3 동창에 2억 뜯은 20대, 피해자 모친 숨져…"최악" 판사도 질타했다
  4. 4 "욕하고 때리고, 다른 여자까지…" 프로야구 선수 폭로글 또 터졌다
  5. 5 계단 오를 때 '헉헉' 체력 줄었나 했더니…"돌연사 원인" 이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