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국민연금 '경영참여' 일단 후퇴…김빠진 증시

머니투데이 전병윤 기자, 세종=정현수 기자 | 2018.07.17 04:00

[용두사미 스튜어드십코드]②외압 우려 등 여론 악화로 후퇴, 자본시장 "달라진 게 없다"실망

편집자주 | '스튜어드십 코드'가 이달 말 시행된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지침서인 스튜어드십 코드 전면적 시행을 앞두고 이해관계자의 촉각이 예민해졌다.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을 기대했던 자본시장은'용두사미'라며 실망감을 드러냈지만 경영권 간섭을 우려하는 재계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국민연금발 스튜어드십 코드 논란을 조명한다.

"정부 입김 아래 있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사외이사와 감사 후보를 추천하면 민간기업의 공기업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지난 4월27일 열린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했던 모 연구기관 소속 위원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 시스템이 정부와 정치권 외압에 취약한 지배구조라며 스튜어드십 코드의 부작용을 우려한 발언이다.

그는 "국민연금이 100개 이상 상장사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고 있다"며 "만약 이 지분을 활용해 (기업) 인사에 개입한다면 낙하산 인사로 민간기업이 공기업처럼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격한 주장처럼 들리지만 이 같은 비판이 스튜어드십 코드 초안에 일정 부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 선임과 해임, 감사 후보 추천, 정관 변경 제안, 주총 소집 요구 등 기업의 '경영참여'로 볼 수 있는 사안이 모두 빠졌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시장 영향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입장이지만, 당초 시장 기대와 동떨어진 결과물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스튜어드십 코드 안이 예상보다 후퇴하자 일각에선 정부가 국민연금을 활용, 기업 경영권에 간섭하려 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결과로 해석했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기업이 290여개에 달할 정도여서 경영 개선을 요구하거나 이사 선임과 해임 등을 요구하면 파장이 커질 수 있다"며 "국민연금의 기준은 다른 연기금과 공제회에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기대가 컸던 금융투자업계는 "알려진 초안대로라면 지금과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당초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상장기업의 주주친화적 정책을 이끌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낙관했기 때문이다.

일본 사례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후 주주환원 경영이 보편화 돼 ROE(자기자본이익률) 10%를 초과하는 기업이 늘었고 배당성향 확대 등으로 주가 상승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스튜어드십코드 센터장은 "정부 안에 경영참여가 빠졌지만 해외에서도 경영권 참여를 보편적인 주주활동 수단으로 활용하지는 않는다"며 "문제가 안 풀리면 경영진에 대한 재선임 건에 반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만큼 정부 안도 충분히 의미 있는 주주활동"이라고 밝혔다.

◇부담스러운 여론, 장막에 숨은 공청회= 정부는 이런 명분을 내세워 올해 초 연구용역을 거쳐 이달 말 도입을 목표로 진행했다.


하지만 '연금사회주의'라는 재계의 거센 반발을 우려해 폐쇄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공청회를 앞두고 있지만 주요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공청회를 하려면 적어도 1주일 전에는 초안을 공개하고 토론해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여론에 밀려 시간에 쫓기듯 진행하고 있어 공청회에서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질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다수 운용사들의 참여가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민연금은 직접 운용을 제외한 위탁 운용(투자일임)을 맡긴 운용사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위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부담을 줄이고 민간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 미래에셋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KB자산운용 등 17개 운용사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200개 가까운 운용사는 준비가 안 된 상태다.

한 자산운용사 사장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대로 하려면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을 선별해 개선을 요구하고 기업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면서 "중소형 운용사는 필요한 인력 충원과 시스템 구축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스튜어드십 코드는 큰 저택이나 집안일을 맡아 보는 집사(스튜어드·steward)처럼 기관투자자들도 고객 재산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에서 생겨난 용어다.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투자한 기업에 대해 주주로서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도록 만든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관투자자가 투자한 기업의 리스크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는 자성에서 얻은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기업의 지속가능 성장에 기여하고 결과적으로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는 2016년 말 경제정책방향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연기금보험회사 등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을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하면서 물꼬를 텄다. 당시 기관투자가들이 투자처인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행사한 탓에 투자자인 고객 이익 극대화와 기업의 건전한 성장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연초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면서 국민연금의 참여가 본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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