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이다.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할 수 있는 근거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만 약 770개다. 주주로서 국민연금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정부가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무기로 기업을 압박할 수 있다며 '연금 사회주의'까지 우려했다.
그러나 "과거와 달라지는 게 있냐"는 회의론도 있다. 도입 과정에서 일부 후퇴한 제도적 장치 탓이다. 자본시장의 의견은 후자에 가깝다.
16일 관계부처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에는 △사외이사 및 감사 후보 추천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등 국민연금의 경영권 참여와 관련된 내용이 빠졌다.
정부가 처음부터 이들 안건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은 지난 4월 연구용역 결과를 보고하면서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 상장사에 사외이사와 감사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당 회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프락시 파이팅'(Proxy Fighting·위임장 쟁탈전)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국민연금이 제안한 주주총회 안건을 통과시키거나 문제가 있는 안건을 저지하는 방식이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국민연금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위원들과 3~4차례 논의했다. 한 전문위원회 관계자는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위원회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수위가) 너무 과도하지 않냐는 우려도 나왔다"고 전했다.
결국 정부 안에 경영권 참여 부분은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월스트리트 룰'(Wallstreet Rule·투자기업이 기관 투자자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을경우 투자를 회수하는 행위)을 적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5월 국민연금 기금운용 실무평가위원회에서 한 참석자는 "팔 수 있다는 힘을 보여줘야 한다"며 월스트리트 룰을 지침에 명시하자고 주장했지만 채택되지는 않았다. 복지부 고위관계자는 "월스트리트 룰은 따지고 보면 소극적 투자원칙으로 스튜어드 코드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와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확대 재편해 신설하는 수탁자책임위원회 역시 사실상 간판만 바꿀 기세다. 연구용역에선 수탁자책임위를 상설화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법 개정 등의 문제가 제기돼 비상설조직으로 출범하게 됐다.
이처럼 일부 후퇴가 있었지만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변화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단계적으로 이뤄지는데 올해는 의결권 행사 사전공시를 추진한다. 현재는 의결권 행사 내역을 주주총회 후 14일 이내에 공시한다.
그동안 시행하지 않았던 주주대표소송은 시행근거를 마련한다. 합리적 배당정책을 요구하는 기업 숫자를 지금보다 2배 늘어난 매년 8~10개로 확대할 방침이다. 비공개 대화를 하되 대한항공 사례처럼 공개서한 발송, 경영진 면담 등의 주주권 행사도 이어갈 방침이다.
이밖에 배당에만 한정했던 중점관리사안을 횡령, 배임 등으로 확대키로 했다. 경영진 일가의 사익 편취도 중점관리사안으로 분류한다. 위탁운용사에 의결권을 위임하는 방안 역시 내년도 추진 사항이다. 2020년에는 중점관리사안을 의결권 행사와 연계키로 했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스튜어드십코드 센터장은 "선진국 사례를 봐도 연기금이 기업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건 자연스러운 관행"이라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다소 늦었지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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