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화이트 엘리펀트'가 된 4대강

머니투데이 조명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  | 2018.07.12 04:43
‘화이트 엘리펀트’(white elephant)는 멜라닌색소가 없어 하얗게 된 흰 코끼리를 말한다. 유전적으로 일종의 변종이지만 희귀하면서 영험해 보여서 그런지 동남아에서는 흰 코끼리를 신성시한다. 석가모니도 흰 코끼리 태몽을 꾼 마하마야 왕비에게 태어났다. 미얀마에선 한때 흰 코끼리를 모시는 큰 사원도 있었다. 하지만 태국에선 흰 코끼리가 왕들이 신하를 골탕먹이기 위한 것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왕의 하사품인 만큼 신하는 흰 코끼리를 정성껏 돌보아야 하지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왕의 엄한 처벌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신하 입장에서 보면 흰 코끼리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골치 아픈 애물단지다. 여기서 연유해 화이트 엘리펀트는 고귀하고 값진 것이지만 계속 간직해 쓰기에는 비용 등이 턱없이 많이 들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난감한 골칫덩이가 된 그 뭔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2017년 11월24일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은 전 세계 여러 건축물 중 많은 비용이 투입됐지만 쓸모없어 화이트 엘리펀트가 된 9개 건축물을 선정·발표했다. 여기에 북한 평양의 유경호텔과 남한의 4대강이 포함됐다. 4대강에 대해선 22조원에 달하는 혈세가 투입되었지만 한국민은 이명박정부가 약속한 사업의 혜택을 전혀 향유하지 못한다고 했다. 오히려 잘못된 설계, 성급한 시공 등으로 보의 안정성, 가둔 물의 불충분한 활용, 수질악화 등의 문제만 갈수록 커지면서 막대한 유지비용이 계속 발생하는 상황임을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정부는 4대강 정책감사를 실시하기로 했음도 알렸다.

감사원은 최근 4대강 사업에 대한 네 번째 감사결과를 내놓았다.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4대강 사업이 부실정책의 전형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펙트로 확인해줬다. 이번 정책감사에서 4대강 사업은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성과를 못 낸 것으로 밝혀졌다. 마스터플랜 수립부터, 환경영향평가, 공사집행, 수질개선 등에 이르는 사업의 전 과정에서 총체적인 부실이 확인된 것이다. 4대강 사업에 투입된 총사업비는 22조2000억원이지만 2013년을 기점으로 앞으로 50년간 소요되는 유지관리비까지 포함하면 총비용은 31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총 편익은 6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100원을 투자해 21원을 건지는 꼴이니 밑져도 한참 밑지는 장사가 4대강 사업이다.


보를 철거하고 4대강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은 4대강 초기부터 제기됐지만 근자에 와서 그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목소리는 여전히 메아리가 되어 몇 차례 울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돈 먹은 거대한 하마가 된 4대강은 냉철하게 보면 지금 당장 폐기하는 게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득이 되지만 정책당국을 포함한 많은 이가 ‘그래도 수십조 원의 혈세가 들어갔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나’란 미련 때문에 계속 품에 두고 있다. 편익 대비 비용의 증가는 현세대는 물론 미래세대에게까지 4대강 채무를 남기게 된다. 뻔히 알고 있음에도 이를 일거에 자르지 못하는 점에서 4대강은 화이트 엘리펀트의 전형이다. 그것도 세계적인 것으로 말이다.

‘콩코드의 오류’란 말이 있다. 이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매몰비용의 오류’와 같은 것이다.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음에도 본전이라도 찾을 요량으로 처음 결정을 번복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을 말한다. 이 비용은 비용이 크게 발생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체감된다. 1962년부터 10억달러를 투입해 생산한 콩코드는 안정성 등 문제투성이였다. 2000년 109명의 탑승자가 전원 사망하는 사고가 난 후 여론이 급속히 악화하고 적자가 더욱 커지자 2003년 결국 콩코드 운항은 중단되었다. 콩코드의 오류를 보다 빨리 인지하고 조치를 취했더라면 사고나 추가비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4대강의 오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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