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문 관세청장 "대기업 비자금 조성, 무역 활용할 가능성 높다"

머니투데이 대담=강기택 경제부장, 정리=박경담 기자  | 2018.07.09 04:30

[머투초대석]김영문 관세청장

김영문 관세청장이 4일 서울 강남구 서울본부세관 집무실에서 머니투데이와 가진 취임 1주년 인터뷰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축구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수비수 쪽으로는 공격하지 않듯이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되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자진해서 법규를 지킵니다.”

축구광인 김영문 관세청장(54)이 말하는 ‘수비수론’이다. 김 청장이 지난 4월 밀수·탈세 의혹이 불거진 한진 총수 일가를 겨냥해 단행한 압수수색은 ‘철통 수비’ 차원으로 볼 수 있다. 관세청이 대기업을 압수수색한 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 ‘관세청이 달라졌다’는 평가의 중심에는 김 청장이 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김 청장을 서울 언주로 서울본부세관에서 만났다.

-취임한 뒤 ‘혁신’을 계속 강조하셨습니다. 김영문표 혁신론의 핵심은.
▶얼마 전 ‘이달의 혁신상’에 광주세관을 선정했습니다. 광주세관으로 가야 할 서류나 물건이 목포세관에 자꾸 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목포세관에선 다시 광주로 보내야 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원인은 인터넷 포털에서 광주세관을 검색하면 (광주본부세관 산하) 목포세관이 가장 먼저 뜬다는 데 있었습니다. 광주세관은 해당 포털에 연락해 이를 바로 잡았습니다.

혁신은 무엇인가 크게 바꾸는 걸 생각하는데 광주세관 사례처럼 사소한 것에서도 일어납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주어진 조건을 인식해 가장 잘 해 낼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혁신은 현장에서 하나하나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형식적으로 법률해석을 하거나 규정을 적용하는 것에서 벗어나 국민·기업의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주기를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간의 관행에서 벗어나 관세행정의 ‘실질화’를 달성하려고 합니다. ‘심사행정’ 위주에서 ‘성실신고 지원’으로 바꾸고, 사전계도·예고단속을 통해 사소한 잘못은 적발보다는 규정을 먼저 지키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김영문 관세청장이 4일 서울 강남구 서울본부세관 집무실에서 머니투데이와 취임 1주년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동안 불법 외환거래 거래와 관련해서도 많이 들여다 봤습니다. 성과와 대책은 어떠합니까.
▶지난 3월 19개팀, 98명 규모로 특별 단속팀을 꾸려 무역 거래를 악용한 재산국외도피 등에 대해 ‘무역기반 경제범죄 특별단속’을 실시해 왔습니다. 올 들어 6월까지 총 366건, 2조4000억원 규모의 불법 외환거래를 적발했습니다. 전년 대비 51% 증가했습니다.

하반기에는 사주 일가의 편법승계·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해외비자금 조성 등 불법 외환거래 여부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계획입니다. 검찰, 국세청과 함께 해외범죄수익환수 합동조사단에 참여해 사회지도층의 해외 재산도피에 따른 범죄수익 환수 활동도 강화할 예정입니다. 서울세관에 외환조사 전담조직인 조사2국 신설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주 일가의 불법 외환거래 여부 조사 배경은.
▶관세청은 밀수, 부적정 외환 거래 등에 대한 수사권을 갖고 있습니다. 기업이 국내에서 비자금을 조성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대기업이나 무역 기업들이 탈세, 비자금 조성을 할 때 외국과 연계돼 있는 무역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유재산 도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한진 총수 일가에 대한 밀수·관세 포탈 혐의 수사를 해 왔습니다. 어느 정도 진척이 있나요.
▶현재까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두 차례 진행했습니다. 대한항공 뉴욕 지사에 있는 직원까지 포함해 60명을 참고인으로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밀수 조사는 시간과 품이 많이 투입됩니다.

해외에서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 몇백개인데 두루뭉술하게 조사할 수 있습니까. 신용카드 내역에 있는 현물을 한국으로 들여온 걸 입증해야 합니다. 가령 구찌 가방을 압수수색해 발견했다고 해도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연관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물이 없다면 외국에서 선물하고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 전 부사장이 전체적으로 혐의를 부인하면서 내놓고 있는 답이기도 합니다.


감으로 보면, 한진 일가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전체 현물을 다 발견한 것 같지 않습니다. 조사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압수자료 분석, 참고인 조사를 마치는 대로 다른 한진 총수 일가를 신속히 소환 조사하고 검찰과 협의해 신병 처리 방향을 검토할 예정입니다.

김영문 관세청장이 4일 서울 강남구 서울본부세관 집무실에서 머니투데이와 취임 1주년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해외 여행자의 휴대품 통관절차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상황인가요.
▶현행 휴대품 통관제도는 자발적인 성실신고를 전제하고 위법 행위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 여행자를 선별해 검사하는 체제입니다. 한정된 인력 때문에 검사율이 낮습니다. 이를 악용해 면세 한도인 600달러를 초과하는 물품을 반입하고도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검사율을 높이기 위해 X-ray 검색을 할 때 인공지능(AI) 기술 도입 등 다각적인 개선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검사로 있을 때 ‘지켜지지 않는 법은 정의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남들도 지킬 것이라 여기는 신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장소, 시간 등 여행자에게 너무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한 대책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진가를 조사하면서 세관 직원과 항공사의 유착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요.
▶ 인력 부족으로 인해 모든 물품을 들여다 보진 못합니다. 누군가를 봐 줬다고 단정 짓기보다 차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완벽하게 유착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현재로선 모든 걸 열어놓고 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우선 신뢰 문제가 있어 200명이 넘는 통관인력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휴대품 통관업무의 연속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인적 쇄신을 추진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묻겠습니다.

김영문 관세청장이 4일 서울 강남구 서울본부세관 집무실에서 머니투데이와 취임 1주년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있습니다. 관세청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면.
▶관세행정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섬나라입니다. 북한이 육로를 막고 있어 해상과 항공으로만 다른 나라와 연결돼 있습ㄴ다. 해상, 항공만 관리하면 물류 이동에 대한 감시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남·북 관계 개선은 육상 관세라는 새로운 과제를 던져줍니다. 관세 국경은 남·북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간, 중국과 홍콩 간, 유럽연합 간 관세 제도가 서로 다르지 않습니까.

이런 부분에 대해 일단은 스터디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화물·여행자 등을 중심으로 관세행정 종합 지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특허 취소 여부를 두고 법리 검토에 착수한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결론은 언제 나오나요.
▶법원이 지난 2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롯데면세점 관련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후 특허 취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데 사실관계를 다투고 있어 재판 과정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법리 검토가 오래 걸리는 이유 중 하나는 부정 청탁이 인정된다고 해서 바로 특허 취소로 연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특허 취소는 많은 사람의 일자리 문제가 걸려 있어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세청의 중장기 과제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전방위적으로 도입하려고 합니다. 전자상거래의 폭발적 증가 등 무역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간소화된 세관 절차를 악용하는 불법행위는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빅데이터 기술 등을 적극 도입해 관세행정을 효율화할 것입니다.

우리 기업의 수출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하겠습니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무역갈등 등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우리 기업에 대한 전방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자유무역협정(FTA) 미활용 기업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컨설팅, 현장방문으로 중소기업의 튼튼한 성장환경 구축을 지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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