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대법원과 정치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8.07.06 04:35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가운데 다음달 퇴임하는 3인의 대법관들 후임이 임명 제청되었다. 우리가 이러고 있는 중에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난리’가 났다.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갑자기 오는 7월31일 자로 종신직인 대법관직에서 퇴임하겠다고 한 것이다.

케네디는 1987년에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했다. 오코너 대법관 퇴임 후 지난 12년간 대법원에서 5:4 판결의 이른바 ‘스윙보트’(균형추)였다.

81세 고령 대법관이 퇴임할 수도 있다. 그런데 타이밍이 논란이다. 공석을 트럼프 대통령이 채우게 되는 것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올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상원 의석 분포가 변하게 되면 트럼프가 지나치게 보수적인 후임자를 임명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케네디의 사임이 정치적 행동은 아니라 해도 대법원 구성과 판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다면 좀 더 신중하고 중립적으로 처신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나오는 이유다.

케네디는 중도보수로 분류된다. 동성결혼을 헌법상의 권리라고 본 2015년의 오버거펠 판결에서 다수의견에 들었다. 이 판결도 5:4였다. 후임자에 따라서는 이 판례가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로(Roe v. Wade)사건 판결까지 거론되고 있다. 1973년에 내려진 로 판결은 낙태를 처벌하는 모든 법을 위헌으로 본 것인데 미국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판결들 중 하나다.

트럼프는 낙태 허용 여부는 주 차원의 문제라는 태도를 비치고 있어서 사실상 판례가 변경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거 중에 트럼프는 로 판결에 비판적인 대법관 두세사람을 임명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상황은 간단치 않다. 현재 미국 상원은 공화당이 이슬아슬한 다수다. 100석 중 51석이다. 민주당이 47, 무소속이 2석이다. 공화당의 수전 콜린스 의원은 로 판결에 비판적인 후보는 인준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트럼프에게 그런 후보를 뽑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종래의 사례를 보면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지명자들이 의도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취해왔기 때문에 과연 의회에서 걸러질지 의문이다. “개별적인 사건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지를 여기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와 “헌법 정신에 합치하는 선례를 존중하겠다”가 의회 청문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범답안이다.

지금 트럼프를 가장 괴롭히고 있는 것은 로버트 뮐러 특검이 수사하고 있는 러시아의 지난 대선 개입, 그리고 사법 방해 혐의 사건이다. 만일 트럼프가 자기 사건을 염두에 두고 케네디의 후임을 지명한다면 미국 내 정치적인 대립은 악화될 것이고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요즘 트럼프 보좌관 가족이 레스토랑에서 쫒겨 나는 판이다. 향후 ‘진보식당’과 ‘보수식당’으로 나뉘어져 인종별로 화장실부터 모든 것을 달리했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냐는 한탄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내 정치적 입지는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하다. 국내에서 트럼프를 나쁘게 평가하는 사람들조차 트럼프가 ‘잘 되었으면’ 한다. 우리 대법원 문제로 코가 석자인데 남의 나라 대법원 문제까지 관심을 두어야 하는 처지다. 지난 4월 트럼프가 우여곡절 끝에 임명한 닐 고서치 같은 훌륭한 대법관이 또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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