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여자가 꼬박꼬박 말대답이냐"…'폭군' 같은 남편

머니투데이 조혜정 변호사  | 2018.07.04 05:20

[the L] [조혜정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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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저는 남편과 한 집에 살면서도 몇 년 간 말 안하고 서로 피하면서 지내왔습니다. 남편이 퇴근해 집에 들어오는 현관문 소리가 나면 저는 거실에 있다가 안방으로 들어가고 남편이 자기 방에 들어갈 때까지 안방에서 안 나갑니다. 아침에는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부엌에 나가 고등학생인 아들이 먹을 아침을 해놓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왔다가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안방 밖으로 나옵니다. 주말에는 보통 남편이 외출을 하는데 남편이 외출을 안하면 제가 밖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 돌아옵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상대방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아들을 통해서 전달하곤 합니다.

남편과는 20년 전 결혼했는데, 서로 말을 안하고 못 본 체하며 산 지는 5년 정도 되었습니다. 결혼 전 남편은 저를 평생 책임지겠다 했고 저는 그런 모습이 남자답다고 생각해서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남자답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모습이 사실은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면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 생각에 제가 맞춰야 하고 사소한 것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내곤 했습니다. 제가 남편과 다른 생각을 말하면 ‘무슨 여자가 그렇게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냐. 되먹지 못했다. 가정교육을 잘못 받았다’고 하면서 저희 부모님까지도 욕하곤 했습니다. 친정아버지 생신에 가족들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남편이 별 일 아닌 걸로 화가 나서 가겠다고 하면서 혼자 나가버린 적이 있고, 그 날 이후 저는 남편 눈치를 보느라 친정식구들과는 거의 연을 끊다시피 하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결혼 초기 남편의 이런 성격을 알고 이혼하고 싶었지만 친정부모님 얼굴에 먹칠할까봐 망설이고 있는데 아이가 생겼고, 아이를 낳은 다음에는 혼자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고 아이를 애비없는 자식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이혼을 못했습니다. 결혼 초기에는 남편한테 눌려사는 게 억울하기도 하고 남편의 성격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자주 반기를 들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한들 저만 힘들다는 걸 깨닫고 점점 남편에게 말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5년 전쯤 제가 무심코 한 말이 맘에 안 들었는지 남편이 그릇을 던져서 산산조각난 사건이 있은 후부터는 제가 남편을 피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서로 말 안 하고 사는 생활이 이어진 것입니다.

저는 남편이 퇴근할 무렵이 되면 심장이 뛰고 가슴이 조여옵니다. 남편생각을 하면 식은 땀이 흐르고 저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리면서 얼마 전부터는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는 증세도 나타났습니다. 오래 전부터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이혼한다고 결심하고 어떻게든 버텨야된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숨이 안 쉬어지는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병원에서는 공황장애라고 하네요. 아들을 생각하면 조금 더 버텨야하는데 이제는 더 버틸 자신이 없습니다.

결혼생활 동안 남편에게 몇 번 이혼하자고 했지만, 남편은 ‘내가 월급을 안 갖다주냐, 바람을 피우냐, 도박을 하냐. 이혼사유가 없으니 소송해도 이혼 안 된다’고 합니다. 지금 이혼하자고 해야 다시 그 말을 들을 것이 뻔하고 무엇보다 남편과 얘기를 하는 것이 너무 무섭고 싫어서 엄두가 안 납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A) 정말 힘드시겠네요. 가슴이 조이고 손이 떨릴 만큼 싫고 무서운 사람과 한 집에서 지내고 계시니 얼마나 괴로우시겠어요. 결혼이 신성하고 자녀들에게 온전한 가정을 주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결혼의 당사자가 이렇게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결혼을 유지할 의무는 없다고 봅니다. 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되기 전에 두 분이 노력을 해서 관계개선을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대화단절의 기간이 5년이나 되는 걸 보면 그런 노력을 할 때도 이미 지난 것 같습니다. 지금 선생님께 필요한 건 회복이 불가능한 관계를 정리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입니다. 엄마로서 아드님을 위해 할 수 있는 만큼 하신 것 같으니 이제 그만 정리를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남편은 본인이 성실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 이혼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네요. 남편은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의 의무를 다하고 있으니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선생님 남편만이 아니라 중년 이상의 세대에서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가부장이 가족의 우두머리였던 농경시대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세상이 변했습니다. 가장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공감과 관계유지능력이 결혼생활에 꼭 필요한 미덕이 되었거든요.


5년간 두 분이 말을 안 하고 지냈다는 점만 보더라도 두 분의 관계가 완전히 파탄되었다는 건 제3자에게도 분명합니다. 선생님께서 이혼소송을 하셔서 5년간의 관계단절을 가정법원에 잘 설명하실 수 있다면 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혼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요새 가정법원은 부부 중 한 사람에게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까지 이혼하면 안된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결혼은 정리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가정법원의 태도입니다. 혹시 이혼이 안될까 하여 불안해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 가장 급한 일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선생님의 증상을 치료하는 일입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을 겪고 계시는 걸로 보이는데 증상이 결코 가볍지 않으니 조속히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실 수도 있지만 선생님의 노력만으로 이 상태를 개선시키기는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나의 정신력으로 이런 상태를 이겨보겠다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기 쉬운 약한 존재이고 아픈 사람은 치료가 필요하답니다. 치료의 타이밍을 놓치면 자기도 모르게 생각이 극단적으로 흘러가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정신과 치료나 상담기록이 있으면 결혼생활파탄을 입증하는 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니 꼭 치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별거도 권하고 싶습니다. 고통의 원인제공자와 같은 공간에서 지낸다면 치료의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아들이 걸리긴 하시겠지만 아들도 웬만큼 컸으니 엄마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걸로 봅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니 집 밖에서 만나면서 모자간의 정을 나누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어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들에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우선 남편과 별거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상태가 좀 나아지면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시작하세요. 두 분의 지난 관계를 보면 두 분이 대등한 상태에서 대화하기가 어려워보이는데, 이런 경우 협의이혼은 적절한 방법이 아닙니다. 남편에 대한 두려움이 큰 상태에서 남편과의 협의를 하는 건 선생님에게 너무 큰 정신적 부담입니다. 20년간 대화가 안 통한 상대와 이혼협의가 잘 될 리 만무하니 협의이혼보다는 이혼소송을 권하고 싶습니다. 법원의 권위와 강제력에 의지한다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남편이 이혼을 수용하고 합리적인 이혼조건에 동의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의 긴 과정을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나고 막막하실 겁니다. 그래도 일단 시작하면 반드시 결과가 있으니 용기를 내세요. 지금은 현재의 불행한 상태를 정리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시자고요. 이혼 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의 다른 걱정거리들은 닥치면 그 때 가서 생각하십시다.

[2005년부터 10여년 간 가사소송을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이 급격하게 해체되어가고 있음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가족해체가 너무 급작스러운 탓에 삶의 위안과 기쁨이 되어야 할 가족이 반대로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10여년간의 가사소송 수행에서 깨달은 법률적인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정상담소’를 통해서 나누려합니다.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해결책을 찾는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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