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선거와 총선거에서 모두 승리했음을 선언했다. 2033년까지 장기집권의 길을 열면서 '21세기 술탄(오스만제국의 군주)'에 등극했다는 평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 심각한 위기에 처한 터키 경제를 살려야 하는 등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 해결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여권 의회도 장악…에르도안, 최장 30년 최고 권력 가능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에 따르면 이날 99%가량 진행된 개표 결과, 에르도안 대통령은 과반( 52.5%)을 득표하면서 결선투표 없이 당선을 사실상 확정했다. 경쟁자인 제1 야당 공화인민당(CHP)의 무하렘 인제 후보는 30.7% 득표에 그쳤다. 터키 선거관리위원회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승리했다고 확인했다.
이날 동시에 진행된 총선에서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정의개발당(AKP)과 우파 성향 민족주의행동당(MHP) 등 여권 연대가 과반 유지에 성공했다. 야권은 AKP의 단독 과반을 저지하고 쿠르드계 인민민주당(HDP)이 10% 이상 득표해 원내 진출에 성공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메흐메트 심셰크 부총리는 총선 결과 발표 후 "개혁 작업을 빨라질 무대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선거를 통해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하고 제왕적 권력을 누리게 됐다. 지난해 4월 터키 권력구조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통과시킨 이후 이를 적용받는 첫 사례가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에르도안 대통령은 부통령 등 고위 관료, 고위 법관을 임명하거나 해임하는 권한을 휘두를 수 있게 됐으며, 임기도 최장 15년까지 가능해졌다. 대통령 임기가 5년 중임은 물론 조기 선거를 통한 5년 연장도 허용하기 때문이다.
만약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론상 최장 기간 대통령직을 유지하면 2003년 의원내각제 시절 처음으로 총리가 된 이후 30년 이상 최고 권력을 누리는 셈이 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론상으로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지만, 실제로 오랫동안 최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실제로 미 달러화 대비 터키 리라화 가치는 올해 들어 20% 넘게 떨어졌으며,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12.15%를 기록했다. 터키 중앙은행이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까지 대폭 올리면서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서민 경제는 파탄 직전에 몰리고 있다.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이스탄불, 이즈미르, 앙카라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수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렸으며, 야권 지지율도 높아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선거 일자를 18개월이나 앞당긴 이유도 지지율 추가 하락 전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함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강력한 권한을 가진 내가 대통령에 당선돼야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경제 정책 실패로 과반 득표에 실패할 것으로 전망됐었으며, CHP는 이를 근거로 이번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날 에르도안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달러 대비 리라 가치는 1.1% 상승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며 "터키 유권자들이 지난 15년간 매년 평균 6%의 고속 성장을 이끈 에르도안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리라화 가치 상승이 단기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선거 공약으로 금리 인하와 통화정책 개입 확대를 제시했다"며 "이는 향후 터키 통화정책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고 지적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에르도안 대통령이 중앙은행을 움직여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순간, 리라화 가치 폭락 등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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