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 말아요, 만만해지니까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18.07.03 05:01

최근 서점가 화두 "까칠하게 단호하게 거절하라"…전문가 "자기합리화 수단 경계해야"

/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직장인 이기호씨(가명·38)는 거절에 쩔쩔매는 이른바 '예스(yes)맨'이다. 직장서 온갖 궂은 일도, 야근과 휴일근무도, 불편한 회식자리도 다 그에게 온다. 그러고도 싫은 내색을 못해 웃고 만다. 지난달에는 결혼기념일과 동기들 모임이 겹쳤는데, 이를 거절하지 못해 참석했다가 집에서 쫓겨날 뻔했다. 가족 행사도 거절 못해 끌려다니느라 지치기 일쑤다. 속으로 쌓아뒀다가 울컥할 때면 불쑥 분노를 드러내거나 술로 회포를 푼다. 이씨는 "이런 성격이 싫지만 잘 안 바뀌어서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참는 게 미덕인 세상이 가고 있다. 좋기만 한 사람은 '바보', 착하기만 하다간 '호구',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된다는 게 정설이 됐다. 이를 반영하듯 똑 부러지게 거절하고 할 말은 다하고 상처 주면 돌려주는 처세술이 인기다. 당당히 자존감을 회복해 스스로를 존중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타인에게 막 대하고 상처주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베스트셀러 화두는 '자존감', "착한 사람 되지 말아라"



2일 인터넷 교보문고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베스트셀러 100위 내에 '자존감' 관련 주제 서적은 총 10권(10%)에 달한다. 예스24도 같은 주제 서적이 베스트 100위 내 총 6권(6%), 영풍문고 총 8권(8%), 반디앤루니스 총 8권(8%) 포함돼 있다.

이들 책 대부분은 '착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일갈한다. 여기서 말하는 착한 사람이란, 타인의 시선에 전전긍긍하며 신경 쓰고, 어떤 부탁도 거절 못해 끌려다니는 이를 뜻한다. 누군가가 상처를 줄 때도 정확히 따지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넘어가는 경우도 포함된다.

이들은 왜 착한 사람이 됐을까.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씨는 저서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에서 "부탁을 거절하면 상대방이 상처를 입을 것이 뻔한데, 쉽게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대방이 나를 싫어할까 두려워 힘에 부쳐도 어쩔 수 없이 계속 부탁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무옌거 작가는 저서 '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에서 "자기 자신을 억누르며 원치 않아도 '그래(yes)'라고 말하는 심리적 배후에는 '당신도 나를 거절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는 기대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부탁 다 들어주면 부작용 커져…올바른 관계 아냐



지난달 4일 교보문고 서가에 비치돼 있는 '자존감' 관련 서적들. 명확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거절하라는 내용이 최근 서점가 화두다./사진=남형도 기자

하지만 이런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정문정 작가는 저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서 "관계의 기울어진 추를 파악한 상대는 무리한 부탁임을 알면서 계속하게 되고, 부탁을 받는 사람은 일그러진 인정욕구와 피해 의식이 겹쳐 자꾸만 의기소침해지고 예민해진다"고 분석했다. 마음이 기껍고 편안한 상태인 경우까지만 부탁 받은 일을 해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 작가는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고 싶고 거절도 잘 하고 싶다면 그건 욕심일 뿐"이라며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대 부탁을 거절할 자유가 있듯, 거절당한 상대가 내게 실망할 자유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라는 설명이다.

종합하면 올바른 대인관계를 위해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피력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때론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 양창순씨는 저서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에서 이를 '건강한 까칠함'이라 표현했다. 양씨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일단 접고 즉각적으로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그리고 간결하고 명료하게 내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처 주는 무례한 이들에게도 당당히 응수해야



지난달 4일 교보문고 서가에 비치돼 있는 '자존감' 관련 서적들. 명확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거절하라는 내용이 최근 서점가 화두다./사진=남형도 기자

상처를 주는 무례한 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착한 사람들은 대부분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기보다 혼자 참거나 괴로워한다. 때론 자신에게 잘못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상처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부정적인 관계를 강화시킨다.

베르벨 바르데츠키는 저서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서 미국 영화배우 '모건 프리먼'의 사례를 들었다. 모건 프리먼이 독일 일간지 인터뷰에서 기자가 "내가 당신에게 '니그로(흑인을 비하하는 말)'라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묻자 프리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기자가 이유를 묻자 프리먼은 "만약 내가 당신에게 '바보 독일 암소'라고 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고 반문했다. 기자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난 관심이 없다"고 하자 프리먼은 "나도 똑같다"고 날카롭게 응수했다.

그러면서 바르데츠키는 "누군가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그냥 덮고 지나가지 마라. 나이가 많고 직위가 높다고 해서 상대가 나를 마음대로 휘두르게 둬서는 안 된다"며 "나는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고,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너는 내게 함부로 상처를 줄 수 없다'는 단단한 마음을 갖고 삶을 헤쳐나가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를 넘어 아예 상대에게 만만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처세술을 조언한 전문가들도 있다. 나이토 요시히토는 저서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에서 "상대에게 놀림을 받았을 때도 어정쩡하게 웃어주면서 상대방의 눈치를 봐서는 절대 안된다"며 "확실하게 상대방을 쏘아보며 눈을 피하지 않고 10초 정도 똑바로 응시하라. 화나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상대방에게 전하라"고 밝혔다.



전문가 "멋대로 살아도 좋다는 식 악용은 경계해야"



/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전문가들은 최근 젊은 층에게 관통하는 키워드가 '자존감'이라 진단하면서,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자기방어 수단으로 삼으면 곤란하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김현정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존감이 낮고 억울한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 20대들이 최근 이 같은 키워드에 꽂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말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타인에게 휘둘리고 이용 당하고도 뭘 잘못했지 생각하는 이들에게 거절해도 괜찮다고 알려주는 책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원래도 제멋대로인 사람이 책 제목만 보고 '거봐, 멋대로 살아도 되지 않느냐'라고 한다거나 어떻게든 손해 안 보려는 쪽으로 악용해 자기합리화 수단으로 삼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런 사람들은 공감과 사회성, 이타성에 대한 훈련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존감에 대해서도 그는 "굉장히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오랜시간 사색하고 고민하고 전문가 찾아가서 해야 와 닿는 것"이라며 "나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장점과 단점을 두루 다 인지해서 받아들이는 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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