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동물이 운다. 실험을 위해 태어나 길러지고 온갖 고초를 겪는다. 쓰임이 다해도 온전한 삶을 못 산다. 건강해도 실험실 내에서 안락사를 당하거나 아깝단 이유로 교육기관 등에 보내져 실험·실습을 다시 한 번 겪는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심한 트라우마가 생긴다. 하지만 대안이 있음에도 불필요한 동물실험들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고 관련법도 보완할 부분이 많다.
20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동물실험에 사용된 동물들은 총 308만 마리에 달한다. 이중 66% 이상은 실험동물들이 심각한 통증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 등급 D와 E 실험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비글구조네트워크에 따르면 한국은 호주(813만마리)·노르웨이(552만마리)·영국(393만마리)·캐나다(357만마리)에 이어 세계 다섯 번째로 실험동물을 많이 쓰는 국가이기도 하다.
포유류 중 인간과 가장 흡사한 개는 주요 실험동물이다. 특히 세계 실험견 중 94%가 '비글'이다. 다른 개들보다 친화적이라 반복적 실험에도 덜 물리는 등 저항이 덜하다는 것이 이유다. 낙천적인 성격도 실험견으로 적합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안 좋은 것들을 빨리 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행복할 권리란 요연한 얘기다. 연구 논문이나 제약회사 개발 등에 쓰이는 일명 '브랜드 비글'은 실험동물 전문 생산업체에서 주로 태어나는데, 새끼 때부터 훈련을 받는다. 물지 않는 훈련, 잡았을 때 꼼짝하지 않는 훈련 등이다. 이를 거쳐 주사기만 들어도 발을 내어주는 강아지들도 생긴다. 훈련을 마치면 귀에 일련의 숫자가 적힌 바코드를 찍는다. 성별, 태어난 날 등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실험이 끝난 뒤 건강한 개체들은 내보내면 좋지만 대부분 안락사 된다. 비글구조네트워크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5년까지 15년 동안 실험에 동원된 개 15만마리 중 구조된 것은 21마리에 불과하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실험이 끝난 뒤 병력적 문제가 없는 비글은 밖으로 내보낼 수 있지만 10건 상담하면 1건 가능할까 말까 하다"며 "결정권자의 동물권 인식이 약하고 나가면 시끄러워 질 수 있어 안 보내주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동물보호법이 개정돼 건강한 실험동물에 한해서는 외부로 기증을 할 수 있도록 명문화 됐다. 하지만 여전히 강제 사항이 아닐 뿐 아니라 인식이 한참 뒤떨어져 있다.
안락사를 피한 실험동물의 삶도 고통스럽다. 실험 프로젝트가 끝난 뒤 아깝다는 이유(브랜드 비글 가격 약 300~500만원)로 대학 등에 기증돼 실험·실습용으로 또 쓰인다. 최소 6~7년은 계속 견뎌야 한다.
실험용 비글 '사랑이'는 5년 동안 한 대학기관서 같은 실험용 비글을 생산하는 역할만 했다. 이후 출산율이 떨어지니 2년 반 동안 실험용으로 또 썼다. 피부쪽을 실험했는지, 무릎 밑 절반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비글구조네트워크에 의해 결국 구조됐다.
이 같은 과정은 실험동물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 유 대표는 "과거를 잘 잊는 비글도 맨날 주사를 맞고 이상한 약을 먹으니 항상 겁에 질려 있다"며 "유기견 비글만 해도 꼬리를 치는데, 실험용 비글은 사람 눈을 피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유 대표는 실험용 비글을 구조한 뒤 안전하고 넓은 곳에서 보름에서 한 달 정도 혼자 쉴 수 있게 둔다. 이어 사회성 좋은 비글들을 같이 지내게 해 본연의 습성을 회복시킨다. 가정으로 보내 임시보호를 하면서 배변 등 문제가 없는지 파악한다. 세 달이 지난 뒤에야 입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3년 동안 40~50마리를 구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5년부터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설치해 동물실험을 피하는 3대 원칙을 지키도록 하고 있다. 첫째는 대체(살아 있는 동물을 이용한 실험을 최대한 피하는 것), 둘째는 감소(동물실험을 할 경우 사용 개체 수 줄일 것), 셋째는 고통 완화다.
하지만 국내 관련법 및 인식은 갈 길이 멀다. 명보영 버려진동물을위한수의사회 소속 수의사는 "우리나라 실험동물 관련법 자체가 회사 등에 용이하게끔 돼 있고 형식적"이라며 "윤리위원회 역할 등이나 법적 조치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실험동물을 대체할 대안도 있다. 유 대표는 "카데바 모형(수의 임상 실습용 인공개)만 봐도 상당히 정교하고 실제 개와 진짜 똑같다"며 "수의사가 된 뒤 실습 등을 얼마든 익힐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교육과정에서부터) 실험동물을 데리고 매스를 들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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