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법] 공무원이 범죄 알고도 고발 안 하면?

머니투데이 백인성 (변호사) 기자, 박윤정 (변호사)기자 | 2018.06.21 05:00

[the L]


고발은 공무원의 의무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34조 제2항은 "공무원이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범죄를 발견한 공무원은 반드시 고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법관 사찰·재판 거래 등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에 연루자들을 형사고발하지 않은 것을 두고 말이 나오는 건 이 조항 때문입니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의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은 판사들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니 직권남용 등의 혐의가 적용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법원행정처 PC에서 발견된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 목적 문건은 실행됐을 경우 이를 보고받은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처장 등이 공무원의 직권을 남용해 인사모 구성원들의 학문·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차모·송모 판사 등 대법원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특정 판사들의 동향 파악을 지시하고 관련 문건을 작성·대응방안을 검토하게 한 행위도 마찬가지로 행정처 심의관들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공무원인 대법원장은 최근 형사고발 없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 표명으로 그쳤습니다. 소속 직원들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면 응당 대법원장이 사법부 수장으로서 고발했어야 하는 만큼 이러한 태도를 두고 직무유기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법원조직법상 대법원장은 일반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며 대법원의 직원과 각급 법원 및 그 소속 기관의 사법행정사무에 관해 직원을 지휘·감독하는 자에 해당합니다.

앞서 소개한 형사소송법 제234조 제2항과 관련한 판례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서울고등법원이 부하직원의 공금횡령사실을 알고서도 이를 고발하지 않은 공무원의 직무유기죄 인정 여부에 대해 내린 1962년 5월 판결(62도41)입니다. 해당 공무원은 인천전매서장으로 재임하던 중 부하 직원으로부터 수시로 공금 부정유용에 관한 보고를 받았을 뿐 아니라, 금전출납 관계서류를 통해 부하 직원이 국고에 납입해야 할 연초 판매수납금을 착복한 사실을 쉽게 적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인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형법 제122조(직무유기)에서 말하는 직무란 공무원이 그 지위에 따라 맡은 바 공무원법상의 본래의 직무를 말하는 것이고 공무원이란 신분관계로 부수적, 파생적으로 발생하는 형사소송법 제234조 제2항에서 규정한 고발의무와 같은 것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므로 피고인이 부하직원의 공금횡령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발하지 않고 방치하였다 하더라도 그로써 곧 직무유기죄가 성립한다고는 볼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

아울러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중 범죄를 인지했다 하더라도 가벌성이 없다고 인정되거나 기타 사정으로 고발하지 않는 것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재량에 따라 고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판례(69노558)도 있습니다.

만일 공무원이 범죄 혐의를 발견하고 고발했는데 무죄가 나왔다면 고발한 공무원은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990년 중부지방국세청장은 관할 관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고 토지거래허가대상구역 내에 있는 임야를 매수했다며 태모씨를 검찰청에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태씨는 토지거래허가대상구역으로 지정되기 이전에 위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이어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태씨는 국세청장의 고발로 인해 손해를 봤다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서울민사지방법원은 이 사건(91가합43911)에서 1992년 "공무원의 고발은 수사의 단서에 불과하므로 형사소송법 제234조 제2항은 공무원이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에 대한 주관적인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면 이를 고발하도록 의무화하는 취지의 규정이라고 할 것"이라며 "고발행위는 법률의 규정에 의한 정당행위이고, 사후에 위 고발에 의한 범죄사실이 무죄로 확정되었다는 사유만으로 고발행위가 위법하다고 한다면 이는 단지 수사의 단서를 제공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사실관계 및 법률문제에 대한 최종적이고 확정적인 결론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판시했습니다. 공무원의 직무상 고발에 의한 범죄사실이 무죄로 확정된 경우라도, 공무원 고발행위 자체를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판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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