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사람이 사람답게 느껴지는 정책이 먼저"

머니투데이 배영윤 기자 | 2018.06.19 15:42

소설가 구병모, 신작장편 '네 이웃의 식탁'…'출산능력=여성'정책 거부감-돌봄 노동 허위의식 드러내

19일 오전 서울 중구 광화문 한 식당에서 열린 구병모 작가의 신작 '네 이웃의 식탁' 출간 간담회에서 구 작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민음사


저출산 시대, 저출산 정책, 출산율 최저. '출산'이라는 용어를 우리는 너무 쉽게 쓰고 있는 건 아닐까. 구병모 소설가의 신작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용어 사용에 대한 문제 인식, 여성에게 가중된 돌봄 노동의 현실, 그리고 현대 사회에 적합한 공동체의 모습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던져준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광화문에서 진행된 구병모 작가의 '네 이웃의 식탁'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구 작가는 "(소설에서) 돌봄 노동이 가족 중 한 사람에게 전가되고, 한 사람의 정신에 미치는 어려움과 문제들을 다뤘다"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과거의 낡은 공동체 형태가 지금의 사회·경제 현실과 잘 맞지 않는 것에 대한 환멸과 절망을 갖고 쓴 소설"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세 자녀를 갖는 조건으로 입주가 허용되는 경기도 외곽의 공동 주택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 입주하는 네 쌍의 부부가 이웃이 되면서 겪는 여러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부부들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있다는 공통점으로 공동 육아를 시도하는데 여기서 삶에 균열이 생긴다.

허구지만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내용을 다룬 점에서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파과'와 같이 킬러, 특수한 질병 등 비일상적인 소재를 다룬 일명 '구병모표 소설'과 이질적이다. 구 작가 역시 "개인적으로도 큰 도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돌봄을 소재로 다룬 점에서 제42회 이상문학상 우수상 작품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와 닮았다.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가 공동체 안에서 육아에 간섭이 심한 어른 세대와 아이 엄마의 갈등을 다뤘다면 이번 소설은 비슷한 세대의 젊은 부부들이 '돌봄 노동'에 의해 공동체를 이루면서 벌어지는 갈등이 주다.

구 작가 역시 한 아이의 엄마로서,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경험했던 애환이 알게 모르게 소설 속에 녹아들었다. 아이를 몇 명 낳으면 어떤 주택에 입주할 수 있고, 지원금을 주는 등의 정책이 실효성이 적은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느껴지는 정책이 아닌 여성을 출산해야 하는 존재로 느껴지는 정책이라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구 작가는 "출산율과 출생률이란 용어가 가진 의미가 다르지만 '출산율'에는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의미가 크고 사람을 가축 셈하듯 머릿수로만 세는 느낌이 들더라"며 "앞으로 우리가 의식적으로라도 바꿔서 사용하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광화문 한 식당에서 열린 구병모 작가의 신작 '네 이웃의 식탁' 출간 간담회에서 구 작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민음사


오랫동안 고민하고 생각해온 문제들을 긴 호흡의 소설로 써보자 결심하게 된 건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 돼지 발언'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사람이 아니라 머릿수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심증'을 눈과 귀로 확인한 계기가 된 것. 구 작가는 "우리 사회가 인간이 인간인 것을 먼저 인식하는 그런 기초적인 것부터 필요한 지경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책에는 '작가의 말'이나 '해설'이 없다. 이에 대해 구 작가는 "이슈가 분명한 소설이기 때문에 소설 밖에 있는 내 목소리가 세게 들어갈까봐 소설 속 화자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다른 글들은 넣지 않았다"라며 "이 책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으면 하는 바람도 담겼다"고 말했다. '거리 두기'를 위해 최대한 실제 상황에 근거한 내용을 넣지 않으려고도 노력했다.

소설은 공동체 돌봄 노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게 드러나 있지만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이와 관련해 구 작가는 "부정적인 측면만 두드러지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소설가로서 긍정적인 부분만을 부각시켜 보기는 어렵다"고 소설가로서의 소명도 내비쳤다. 또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건강한 대안'이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육아와 여성들의 이야기 비중이 크기 때문에 페미니즘 소설로 볼 수 있다는 시각에 대해 구 작가는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그는 "페미니즘에도 수많은 관점이 있기 때문에 내가 규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잘잘못을 따지거나 한쪽의 편을 드는 게 아닌, 모두가 결점이 있는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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