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99명에 '불법자금 혐의' 황창규 KT 회장, 사전구속영장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 2018.06.18 12:00

상품권깡 4억4190만원, 임원 개인명의→전·현직 국회의원 99명… 정치권도 조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황창규 KT 회장이 올 4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에 피의자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경찰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황창규 KT 회장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회사자금으로 산 상품권을 현금화해 마련한 4억여원을 전·현직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 후원한 혐의다.

경찰은 KT 측의 후원금 제공 사실을 알았던 정황이 있는 약 10명의 의원실 등을 중심으로 수사를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8일 업무상 횡령·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황창규 KT 회장 등 7명을 입건해 이 중 황 회장과 대관부서인 CR(대외협력) 부문 전·현직 임원 등 4명은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사전 구속영장이 신청된 임원은 현직 사장급인 구모씨(54)를 비롯해 각각 사장과 전무급으로 퇴직한 맹모씨(59), 최모씨(58) 등이다.

이들은 이른바 '상품권 깡'(상품권을 구매한 후 수수료를 떼고 되팔아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조성한 현금 4억4190만원을 19대·20대 국회의원 99명의 정치후원회 계좌에 입금한 혐의다.

경찰에 따르면 KT CR 부문 임원들은 법인자금으로 주유 상품권 등을 구입한 후 이를 현금화하는 수법으로 2014년 5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총 11억5000여만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했다.

KT는 이 중 일부를 임직원 개인 명의로 의원들에게 불법 후원했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법인이나 단체는 정치자금을 후원할 수 없는데 이를 피하려 꼼수를 썼다.

경찰 조사 결과 2014·2015년과 지난해에는 CR 부문 임·직원 명의로 후원했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2016년에는 사장을 포함한 고위 임원 등 총 27명 명의를 동원했다. 경찰 관계자는 "KT는 임원별로 입금대상 국회의원과 금액을 정리한 계획을 체계적으로 수립해 시행했다"고 말했다.

돈을 받은 국회의원실에서 직·간접적으로 KT의 후원 사실을 인지한 정황도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CR 부문 직원들은 임·직원 명의로 후원금을 입금하면 해당 의원실 보좌진 등에게 KT의 후원금인 사실을 알렸다.


경찰 관계자는 "통보받은 의원실에서는 '고맙다'고 하거나 후원금 대신 자신들이 지정하는 단체에 기부를 요구하기도 했다"며 "몇몇 의원실에서는 단체의 자금을 받을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대부분 다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불법 후원의 이유가 통신 관련 예산이나 입법 등이 KT에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청탁을 넣기 위해서라고 본다. KT 관계자들은 SK브로드밴드·CJ헬로비전 합병이나 합산규제법을 저지하고, 황 회장이 국정감사 출석자 명단에서 제외되는 등 KT에 유리한 방향으로 국회 현안 논의를 이끌기 위해 후원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KT가 상품권 깡으로 조성한 11억5000여만원 중 후원금을 제외한 나머지 7억여원은 영수증도 없이 '꼬리표 없는 돈'으로 쓰였다. 경찰 관계자는 "KT 관계자들은 이 돈을 골프 비용·식대·택시비·주점 팁·유흥업소 접대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진술했으나 영수증 처리가 돼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회계 감사도 실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CR 부문의 불법 후원이 황 회장 용인하에 이뤄진 것으로 판단한다. CR 부문 임원은 불법 정치후원금 기부 계획부터 실행까지 모두 회장에게 보고해 이뤄졌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황 회장 측은 "국회 후원은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러한 내용을 보고받은 사실이나 기억이 없고 CR 부문의 일탈행위로 판단한다"며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불법후원 관련 내용이 담겨 있는 회장 보고 문서 등을 증거자료로 확보하고 황 회장에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앞으로 KT 자금을 입금받은 국회의원실의 후원 계좌 회계책임자 등을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고맙다', '알았다' 등의 답을 KT에 보냈던 약 10명 의원실의 관계자들이 우선 조사 대상이다.

또 일부 의원실에서 정치후원금 대신 지역구 내 시설이나 단체 등에 기부·협찬을 요구하거나 보좌진이나 지인을 KT에 취업시켜달라고 한 의혹에 대해서도 추가로 수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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