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독립성과 체계성의 조화

머니투데이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미래법정책연구소 대표) | 2018.06.15 04:10
북미 정상회담에 이은 지방선거까지 나라가 온통 거대 뉴스에 매몰된 지금 매우 중요하지만 덜 논의되는 이슈가 사법권 남용 사건이다. 지난 정부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이에 반대하는 판사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나아가 청와대가 관심 있는 재판에 협조했다는 의혹이다. 연일 법원 내부에서는 사법권 독립을 위한 조치로서 검찰 고발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사법권 독립과 같이 독립성(independency)은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핵심의제다. 독립성이 가장 많이 논의되는 영역이 조직의 독립성이다. 예를 들어 사법권의 독립성, 중앙은행의 독립성, 감사원의 독립성, 금융감독원의 독립성, 방송통신위원회 등 독립규제기관의 독립성이 그것이다. 다른 중요한 독립성 분야가 검사의 독립성, 법관의 독립성, 사외이사와 감사의 독립성 등과 같은 인적인 독립성이다. 인적 독립성이 조직 외부뿐 아니라 조직 내부로부터의 독립성도 포함하는 데 반해 조직의 독립성은 조직 외부로부터 독립성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독립성이란 특정 기관이나 특정인이 전문성을 기반으로 이해관계에 얽매이거나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영향력을 받음이 없이 독자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컨대 사법권의 독립은 누구의 간섭이나 지시 없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판하는 것을 말한다. 독립성이 필요한 이유는 해당 분야가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중립적 영역이 확보되지 않으면 고유한 기능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독립성이 요구되는 분야에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분야 존재의 정당성이 없어진다. 예를 들어 경영진에 대한 감시를 목적으로 선임된 사외이사가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으면 사외이사 존재의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분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법원이 당사자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면 법원의 해결책을 당사자가 수용할 수 없고 결국 사법부는 정상적 기능을 할 수 없다.


다만 독립성만이 지고지순의 가치라고 할 수 있을까. 사법부의 독립은 국민과 국가의 요청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검사의 독립이 검찰이라는 조직 전체의 권한행사 방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체계성(system)이라는 가치가 등장한다. 체계성이란 일정한 원리에 따라서 개별 부분이 짜임새 있게 조직되어 통일된 전체를 이룬 특성이나 상태를 의미한다. 아무리 독립성이 강조되는 경우에도 상위 체계나 가치 아래에서 통제되지 않거나 동등한 계층으로부터 견제를 받지 않는 독립성은 해당 분야의 이기심 추구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특히 공익달성을 임무로 하는 정부, 공공기관이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전체 국가정치행정체계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우리 사회 공적 영역의 붕괴를 가져온다.

예전 집에서도 많이 들었지만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결론은 부모 말을 듣는 것이 좋았다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어찌 보면 독립의 요구는 인간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독립과 자율의 욕구가 혁신을 유도하는 동력이 되거나 진정한 중립적 영역을 확보함으로써 공공선을 달성하는 수단이 되면 좋겠지만 혹시 이기심을 기반으로 끝없는 분쟁만을 야기하는 것은 아닌지도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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