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봉사는 다비식이 시작되기 전에 막간을 이용하여 다녀왔다. 오전 10시쯤 도착했는데, 다비식은 오후 1시가 넘어야 시작한다고 해서 모처럼 경내를 찬찬히 돌아볼 수 있었다.
누가 건봉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소나무 길'이라고 대답한다. 열병하듯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면 괜스레 든든하고 행복해진다. 수령 200~300년은 족히 된 이 소나무들은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것들이다. 특히 적멸보궁 맞은 편 산등성이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는 발군이다. '건봉사 왕소나무'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낙락장송이란 말을 온몸으로 설명하듯 고고한 자태를 자랑한다.
안내문에 따르면 건봉사는 신라시대 법흥왕 7년(520년)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원각사(圓覺寺)라 불렀다. 그 후 도선국사가 중수하여 서봉사(西鳳寺)라 하였다가 1358년에는 나옹화상이 다시 중수하고 건봉사라고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 세조 때인 1464년에는 어실각(御室閣)을 짓고 역대 임금의 원당(願堂)으로 삼았다. 1878년에 일어난 큰불로 3183칸이 전소됐으나 여러 차례 복원하여 1911년에는 9개 말사를 거느린 31본산의 하나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호국도량이기도 했으며 구한말 개화사상과 신문화교육을 위해 봉명학원을 운영했다. 특히 한국전쟁 중 2년 동안은 아군 5, 8, 9사단, 미군 10군단과 북한군 5개 사단이 16차례의 치열한 공방을 벌이면서 일대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1994년 이후 점차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전쟁 전 건봉사는 총 642칸과 보림암 등 124칸의 18개 부속암이 있었다.
다른 절을 소개할 때에 비해 건봉사의 궤적을 상세하게 기술하는 것은 그 역사를 알아야 이 절이 제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화재 등을 찾아갈 때는 무엇을 중시해서 볼 것인가 미리 정하고 가면 좀 더 풍요로운 여행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풍경을 잘 살펴봐야 하는 곳, 건물의 구조를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 곳, 전체적인 역사를 살펴볼 곳 등 각각의 특징을 파악하고 가면 좋다.
능파교 가운데 서서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물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옛사람 누군가도 여기 서서 냇물을 보았겠지. 세월에 따라 사람은 바뀌어도 자연은 변함없이 자신의 역할을 한다. 건봉사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십바라밀석주이다. 능파교를 건너면 높이 158㎝의 돌기둥 2기와 만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십바라밀석주이다. 이 돌기둥에는 십바라밀(十波羅蜜)의 도형이 음각돼 있다. 십바라밀은 대승불교의 수행방법을 상징화한 것으로, 그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가 새겨져 있다.
이 밖에도 건봉사에 가면 잊지 말고 찾아봐야 할 게 몇 가지 있다. '왕소나무' 외에도 주차장 옆에 있는 대형 돌확과 공양간 뒤편에 있는 장군샘 등이 그것이다. 건봉사는 폐사지로 남아있는 빈 절터까지 천천히 돌아보면서 곳곳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을 확인해보기에 좋은 절이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다녀올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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