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바이오 IPO, 최저 검증선 없앤 거래소

머니투데이 박계현 기자 | 2018.05.30 17:33
"혁신 신약(first in class)을 개발 중이다 보니 전임상은 미국에서 진행했고 임상 1상은 유럽에서 진행 중입니다. 향후 글로벌 제약사로 기술이전을 하려면 이 편이 유리하거든요." (비상장 신약개발업체 A사)

올 하반기 기술특례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한 항암제 개발업체에 해외에서 임상을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이 업체는 가장 진행단계가 빠른 파이프라인이 현재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 FDA에서 시판 허가를 받기까지는 적어도 10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기간도 길지만 임상 1상에서 신약 승인 단계까지 통과할 확률은 9.6%에 불과하다.

창업 이후 줄곧 적자를 지속하고 있는 A사가 계획한 대로 연내 코스닥 상장에 성공할 경우 이 기업 투자자들은 기간상으로는 10년, 확률상으로는 10%라는 위험부담을 함께 짊어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한국거래소는 유망 기술기업에 한해 적자기업에도 상장 문호를 개방하되 먼저 거래소가 지정한 전문평가기관 2곳에서 A, BBB 등급 이상을 받아야 상장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문턱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최근 한국거래소는 이익미실현(일명 테슬라) 요건 상장 대상에 바이오 기업도 포함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바이오 기업이 기술성 평가를 거치지 않고 상장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기술성 평가를 거치지 않을 경우 실적 근거도 없이 적정 가치를 매기는 책임이 온전히 해당 기업과 주관사 손에 맡겨지는 셈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적자 바이오 기업이 테슬라 요건을 활용해 상장할 경우 기술성 평가라는 보호장치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시장에선 이미 바이오업종 전반의 고평가 현상을 두고 '복마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업종 특성상 한 회사에서 개발하던 신약 개발이 어그러지면 플랫폼기술이라도 시장에 남는 것이 아니라 증발되고 만다. 평가기관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이에 대한 보완책을 고심해야지, 이미 자율조정기능을 잃어버린 시장에 책임을 고스란히 떠넘길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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