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동서’되고 女 묘 판 뒤 수의 훔친 ‘변태성욕자’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8.05.26 06:40

[따끈따끈 새책] ‘조선의 퀴어’…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

과학기술의 발달로 ‘몰카’, 관음, 동성애 등 변태 성욕이 기승을 부리는 세태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주소지만, 이보다 100년 앞선 식민지 조선에서도 유사한 사례는 적지 않았다. ‘이상한’의 뜻으로 시작해 ‘성소수자’로 굳어진 ‘퀴어’의 주인공들이 조선 근대화 과정에서 속속 신문 지면에 등장했다.

저자는 “1920~30년대 ‘변태성욕’ ‘반음양’ ‘여장남자’ ‘동성연애’ 같은 새로운 분류와 이것을 뒷받침하는 앎의 체계들이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라고 설명한다.
서구의 성과학 지식이 수입되고 번역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젠더 비순응자들의 다양한 사례들이 신문과 잡지를 통해 다뤄진 셈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끊임없이 흔들리던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아가씨’처럼, 이 시기는 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섹슈얼리티의 역사’였다. 책에 따르면 동성애, 인터섹스, 크로스드레싱(여자의 남장, 남자의 여장), 트랜스젠더 등 오늘날 서구적 개념으로 인식되던 것들이 이미 이 시기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1929년 한 신문은 ‘여자의 묘를 파고 수의를 훔친 변태성욕자’ 사건을 보도했다. 경북 봉화군에 사는 한 남성이 5년간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며 20여 개 여자 무덤을 파헤쳐 수의를 훔쳐 집에 보관했다는 내용이다. 기사에서 그는 경제적 이유로 저지른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이 ‘극단의 변태성욕환자’로 명명됐다.

남자 동성애는 당시 ‘수동무’라는 단어로 표현됐다. 성인 남성과 ‘미동’(美童)인 소년은 서로 다른 의무를 졌다. 어른 쪽에서는 추석 등 명절에 경제적 후원을 약속하거나 일손을 거들어주는 식으로 행동해야 했고, ‘미동’은 순종하며 성관계에서 수동적 역할을 요구받아야 했다.

연구 참여자들은 수동무 관계를 맺은 소년들이 주변인으로부터 ‘작은 마누라’로 불리고 상대의 부인에게선 ‘동서’로 불리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경계를 위협하는 여성들의 욕망도 드러난다. ‘S관계’로 불린 여성 간의 친밀성은 “여학생 시대로 돌아가 동성연애를 하고 싶다”는 고백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에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메시지가 새겨진 염동반지를 주고받는 관행으로 이어지며 당대 여성 동성애가 여학교 중심으로 일반화했음을 보여준다.

여성 동성애는 김용주 등 남성 지식인들의 비판처럼 ‘바람직한 여성상에서 이탈한 히스테리적인 여성’으로 규정됐지만, 한정되지 않은 여성 주체의 등장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단발하고 남장을 한 여인, 여장한 미남자 사례는 성별 구분과 성 역할을 넘나드는 인간 본연의 ‘도발’이라는 점에서 주목됐다. “나도 남자처럼 공부하겠소. 나는 죽으면 죽었지 다른 데로 갈 수는 없소”라며 남장한 여학생의 복장을 통한 시위는 성의 경계를 둘러싼 불안정한 정의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1921년 24세까지 ‘계집노릇’을 해오다 별안간 남자가 된 일본인의 사연은 성과학 수술의 성공적 사례로, 고착화한 성 구별 인식의 유연한 태도로 기억됐다.

조선의 성과학은 정상이 아닌 성적 실천은 모두 ‘도착’으로 분류했고 도착의 번역어인 변태성욕은 언론이 폭넓게 쓰면서 대중에게 깊이 각인됐다.

당시 언론에서 주로 쓰던 키워드는 ‘에로, 그로, 넌센스’였다.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의 줄임말로, 엽기적 사건에 주로 이 단어들이 동원됐다. 항문에 금괴를 숨긴 사건은 ‘국경의 넌센스 범죄’, 어린아이의 머리가 발견된 사건에선 ‘그로 100%의 참혹한 범죄’ 같은 식이었다.

저자는 “1920, 30년대는 식민지 조선에서 대중문화와 의료 권력,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싹텄던 시기라는 점에서 개방적 성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았다”며 “당시 사건들은 남성 엘리트의 시선을 고스란히 반영하지만, 그와 동시에 통제와 검열로 다 소화하지 못하는 성적 욕망과 실천들이 끈질기게 지속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의 퀴어=박차민정 지음. 현실문화 펴냄. 320쪽/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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