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배우가 헤드윅을 연기한다면

김서연 ize 기자 | 2018.05.24 09:03
지난 4월 30일, 공연제작사 알앤디웍스에서는 소속 배우인 고훈정, 김찬호, 송용진, 송유택, 조형균이 자신의 이름을 건 단독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미 충분히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배우들이었기에 팬들은 콘서트 소식을 반겼다. 하지만 동시에 여자 배우들의 콘서트에 대한 궁금증이 제기됐다. 특히 차지연은 얼마 전 재계약을 마쳤고, 최수진은 올해 초 대명문화공장에서 열린 4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안유진과 함께 ‘퀸즈맨’(QUEENS’ MAN)이라는 타이틀로 여자 배우만의 콘서트를 하기도 했다.

여자 배우들의 단독 콘서트 여부는 갑자기 제기된 궁금증이 아니다. 이전부터 점점 좁아지는 여자 배우들의 입지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있었다. 많은 작품들이 남성 배역 위주거나, 때로는 남성 배역으로만 이루어지기도 했고, 여성 배역은 있다 해도 주로 보조적인 데 머물러 있었다. 여성의 성과 사랑을 솔직하게 다룬 뮤지컬 ‘레드북’처럼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은 소수다. 이로 인해 여성이 다수인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는 배역의 성반전이 이루어진 ‘리버스 공연’을 기대하기도 한다. 특히 ‘더 데빌’(알앤디웍스), ‘헤드윅’(쇼노트), ‘지킬 앤 하이드’(오디컴퍼니)에 대해서는 꾸준히 성반전 된 공연에 대한 문의가 있었다. 작년 8월에는 블루스퀘어에서 열렸던 알앤디웍스 콘서트에서 ‘더 데빌’ 넘버를 남녀 배우가 바꿔 불렀고, 차지연은 올해 초 열린 제2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헤드윅’ 넘버 ‘Midnight Radio’를 부르며 그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킬 앤 하이드’의 경우에는 헝가리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여성 버젼의 ‘지킬과 하이드’를 선보인바 있다.

이에 대해 알앤디웍스 측 관계자는 “이미 2014년에 여자 배우의 콘서트를 열었다. 콘서트의 경우 배우들의 스케줄 등 여건이 된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리버스 공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진 못했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정도의 의견만 전했다. 반면 쇼노트 측은 “입장을 밝히기 조심스럽다”고 밝혔고, 오디컴퍼니 측은 “작품에 대한 결정은 신춘수 대표가 하고 있다”는 답변으로 대신했다. 세 회사 모두 리버스 공연에 대해서는 별다른 인식이 없는 상황이다.


물론 성반전 공연이 가능한 것인지 여부부터 따져봐야 할 수도 있다. 팬들이 요구한다고는 하지만, 제작비를 회수할 만큼의 시장성이 있는지도 검토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시장성을 검토하기 전에 여자 배우들에게 남자 배우들과 동등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는 당연히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남성 배역들이 주인공으로서 발전적이고 주체적이며, 특히 작품 내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가진 경우가 많은 반면, 여성 배역들은 수동적이거나 소모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렇게 고정된 성역할 속에 갇혀버린 여성 배역은 여자 배우들이 성장할 가능성을 제한하고, 관객들이 여자 배우의 매력을 느낄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의 티켓 파워를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또한 관객층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 관객들이 남자 배우만 좋아할 것이라거나, 여성이 희생자나 도구적 역할에 그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성 배역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작품도 충분히 시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레드북’을 통해 확인됐다.

물론 리버스 공연을 하기 위해 모든 넘버의 편곡을 다시 해야 한다거나, 내용을 수정한다거나 하는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가능한 작업도 아니다. 남성 2인극 뮤지컬 ‘트레이스 유’가 배역 중 하나를 여성으로 캐스팅하기도 했다. 작년 9월 열린 ‘더 뮤지컬 페스티벌 인 갤럭시’에서는 안유진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위대한 생명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를 부르기도 했다. 안유진, 차지연 외에도 많은 여자 배우들이 보다 다양한 배역에 대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 남은 것은 뮤지컬 제작사들의 인식과 의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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