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혁신성장과 사용자 경험

머니투데이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 2018.05.24 04:05
1960~80년대는 기본적인 생활 영위를 위해 필요한 재화를 갖추는 시대였다. 대량생산으로 소비자들의 양적 필요성을 충족했고 품질관리로 질적 욕구도 만족시켰다. 당시 키워드는 소유와 견고함으로 필요한 재화를 소유하고 고장 없이 오래 쓰는 것이 최상의 가치였던 시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전의 물질적 가치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기술혁신과 품질향상의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기술 공급과잉과 함께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소비자들은 글로벌 시장접근성이 높아졌고, 감성과 사용성은 소비자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 핵심 가치로 부상했다. 산업화 시대의 물질적 가치가 인간의 본질적 가치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영화나 실험실에서 볼 수 있었던 자율주행차와 모빌리티, 로봇과 인공지능,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등 미완의 기술과 서비스들이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의 실현을 가능케 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경제성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 공유경제와 온디멘드 등 기존 시장과 기득권을 파괴하는 서비스들도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러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내세우는 공통 가치와 철학이 있다. 바로 사용자 경험이다. 새로운 기술들을 활용한 가치 있는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이 새롭게 형성되는 초기시장을 선점하고 지속가능성 확보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경험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휴먼웨어에 대한 논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동안 휴먼웨어는 제품과 서비스 공급자가 인력과 조직관리 차원에서 사용한 용어였다.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개발자, 관리자 등도 시스템 개발요소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제는 휴먼웨어 범위를 소비자로 확장해야 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소비자가 원하는 혹은 특성에서 벗어난 사용자 경험을 고민하지 않으면 이제는 시장경쟁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는 시대다.

아쉽지만 우리나라에서 개발하고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가진 사용자 경험이 적용된 제품과 서비스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발간한 2016년 기술수준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용자 경험 기술수준은 미국의 84.6%로 일본과 유럽 등보다도 낮다. 그동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치중한 당연한 결과다.


물론 사용자 경험의 중요성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치 있는 사용자 경험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 기술과 산업으로 연결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이 부족했다. 연구·개발 초기단계부터 철저한 서비타이제이션(Servitization)을 고려하는 문화도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다.

혁신성장이 정부의 화두다. 정부의 13대 성장동력과 8대 선도산업뿐만 아니라 대부분 민간기업이 이른바 4차 산업혁명 분야에 올인했다. 혁신의 가치와 성패는 시장과 소비자가 평가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새로운 사용자 경험이 반영된 관련기술 기반 서비스를 경험하기도 쉽지 않다. 인터넷 영상과 언론보도로 특정 행사 등에서 시연되는 시스템들을 가끔 접할 수 있을 뿐이다.

패스트 팔로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따라잡는 방식으로 사용자 경험을 뒤쫓아가긴 쉽지 않다. 빠른 성과를 만들기 위한 속도전도 통하지 않는다. 하루빨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중심 산업화 시대의 덫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나라 4차 산업혁명 경쟁력 확보는 더욱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기술의 완성과 성공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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