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은 되고, 손은 안 된다?…지뢰밭 '선거법'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 2018.05.28 05:00

[the L] [재판의 법칙-선거법 ②] 지나치게 세세한 규정…"'돈은 묶고 입은 푸는' 법 개정 필요"



#2004년 총선에서 경기 포천·연천 지역구에서 당선된 이철우 전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250만원이 선고되면서 의원직이 박탈됐다. 당시 상대 후보였던 고조흥 전 의원을 지목해 "고조흥이 '투표하지 말고 놀러가도 된다'고 했다"는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였다.

이 전 의원 측은 "당시 보수언론 '조중동'에서 선거일 당시 여행 기획기사가 쏟아져 나온 것을 비판하면서 '조중동이 선거일에 놀러가도 된다고 했다'고 한 것"이라며 "'조중동'이라는 발음이 '고조흥'으로 잘못 들린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전 의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법인 이래의 박은태 대표변호사는 "당시 현장을 녹음한 선거관리위원회의 녹음 테이프가 법정에 제출되지 않아 이·고 전 의원 측이 내세운 증인에만 의존해 재판이 진행됐다"며 "결국 고 전 의원 지지자의 아들인 부정선거 감시단원의 증언으로 이 전 의원의 당선무효가 결정됐다"고 전했다.

이 전 의원의 사례는 '모호할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형사법의 일반원칙이 무시된 대표적 경우로 꼽힌다. 당시 선관위의 녹음 테이프가 법정에 제출되지 않은 것은 '선관위 이사 과정에서 테이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현직 의원의 당선을 무효로 한 재판이 '증거'가 아니라 '증언'에 의존해 진행된 것이다. 박 변호사는 이 재판에 대해 "유죄 선고를 하려면 합리적 의심이 없이 범죄사실이 증명돼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선거법 재판 뿐 아니라 선거법 자체에도 '함정'이 많다. 일각에선 선거방식 등에 대한 규제가 지나치게 세세해 법 위반을 오히려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운동을 위한 피켓 등 표지물에 대한 규제가 대표적이다.

김상률 변호사(법무법인 선정)는 "예비 후보자가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피켓을 목에 걸고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는 허용되지만, 피켓을 손에 들거나 옆에 세워두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금지된다"며 "선거법상 표지물을 '착용'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착용'이 아닌 '소지'하는 것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비 후보자와 달리 정식으로 후보자로 확정된 이후에는 피켓을 손에 들거나 옆에 세워두는 것이 가능하다.


이처럼 선거방식에 대한 까다로운 규제가 현역 등 기존 정치인들에 비해 덜 알려진 정치 신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황정근 법무법인 소백 대표변호사는 "현역 국회의원이나 지방 단체장 또는 의원 등은 임기 동안 의정보고서 등으로 활동을 홍보할 수 있는 반면 이들에게 도전하는 신인들의 활동은 극도로 제한된다"며 "선관위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들에게는 기간 제한 없이 일정 요건 아래 사무소 개설과 후원금 모금, 지지 호소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국민들에게 훨씬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품수수나 부정한 기부행위는 허위사실 공표 등에 비해 법 위반 여부를 가리기 쉽지만, 여기서도 억울한 사례는 나온다. 변호사이기도 한 문병호 전 의원은 한 지역 주민의 부탁으로 무료 변론을 제공했다. 그런데 부탁을 한 이 당사자가 문 전 의원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이에 문 전 의원은 2004년 기소돼 벌금 70만원이 확정됐다.

의원직 박탁 기준인 벌금 100만원에 못 미쳐 의원 신분은 유지가 됐지만 유죄라는 판단이 떨어진 것이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부탁을 한 당사자의 고발이라는 점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지만, '후보자는 일체의 기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어겼다는 점이 유죄로 인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변호사는 "허위사실 공표나 후보자 비방 등 모호하게 해석될 수 있는 규정이나 까다로운 선거방식 규제처럼 일반 국민들의 이익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규정은 대폭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돈은 묶고 입은 풀어주는' 방향으로 선거법 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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