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회사가 시켜서 하는 야근 아닌데…" 난감한 의류벤더

머니투데이 양성희 기자 | 2018.05.17 16:48

[52시간시대 그레이존]⑤해외 바이어와의 시차 탓…"근무제 일률적 적용 어려워, 구체적 가이드라인 필요"

편집자주 | 오는 7월 주당 근로시간 52시간 시대가 열리지만 탄력근로와 재량근로, 포괄임금 등은 그레이존에 남아 있다. 구호 수준의 방침만 있을 뿐, 제도의 디테일은 빈약하다. 정부가 ‘가야할 길’이라며 재촉하지만 기업은 비포장도로 앞에서 혼란스럽다. 그 험난한 풍경을 들여다본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글로벌 브랜드에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의류 벤더회사 들어가고 싶은데요. 야근이 그렇게 많은가요? A사는 새벽에 퇴근한다는데 사실인가요?"

패션업계 취업준비생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와 업계 종사자들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글이다. 패션업계, 특히 의류벤더 업계에서 야근은 흔한 풍경이다. 또 '팀 바이 팀', '바이어 바이 바이어'라는 말이 통용되듯 팀과 바이어에 따라 업무강도의 차이가 크다.

야근이 일상인 의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ODM(제조자개발생산) 기업들도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주 52시간 근무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회사마다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인데 "업무환경을 일률적으로 맞추기 어렵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업계 특성상 야근이 불가피한 건 해외 바이어와의 시차 때문이다. 저녁·밤 연락이 불가피한 데다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새로운 주문이 발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디자이너는 "야근은 회사가 시키는 게 아니라 할 수밖에 없어서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와 관련,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관계자는 "일종의 보완책인 탄력근무제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현행 3개월로는 부족하고 최소 1년은 필요하다"며 "시즌별로 성수기가 있기 마련인데 의류뿐만 아니라 제조·납품업체 전반에 해당되는 얘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일이 몰리는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를 감안해 최대 3개월의 단위 기간을 두고 '탄력근무제'(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허용한다. 이 기간 중에 특정한 주는 법정 근로시간 초과가 가능하다.

야근 등 초과근무 수당 책정,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비롯해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야근은 자율적이라는 인식이 강해 현재까지 따로 수당이 지급되지 않아왔다"며 "수당 지급 여부를 논의 중인데 책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계약직원들의 처우 문제도 함께 논의하는 것이 맞지만 거기까지는 여력이 되지 않아 난감하다"고 했다. 비용 부담도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실제로 업계 상위권에 속하는 한 OEM·ODM업체는 최근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부서 효율화 작업을 통해 40명 정도의 직원이 권고사직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주 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회사마다 각종 제도를 시범운영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 예로 대표적인 OEM·ODM 회사 한세실업은 최근 들어 야근을 '허가제'로 바꿨다. 부서장의 승인이 있어야 초과 근무가 가능하도록 한 것인데 승인 여부는 문서로 남겨야 한다. 야근을 하더라도 회사 전등과 PC는 밤 9시에 일제히 꺼진다. 수당은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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