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추진하고 있는 채용비리에 따른 피해자 구제 방안이 현행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마련중인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에는 채용비리에 따른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이 담긴다. 이를 위해 예비합격자를 두도록 했다. 예비합격자를 두는 등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이상 탈락자의 개인정보를 은행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은행이 탈락자의 개인정보를 보관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현행법은 탈락자의 개인정보를 파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에 따르면 채용 여부가 확정된 날 이후 180일이 지나면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채용서류를 파기해야 한다. 은행들은 그동안 채용절차법에 따라 채용서류를 파기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피해자 구제를 위해서는 채용서류를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며 "채용서류를 파기하도록 돼 있는 채용절차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도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현행법 위반 소지는 없다. 공공기관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공공기록물법)에 따라 채용서류를 영구 보존할 수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에 대해 예비합격자를 두는 등 채용비리 피해자를 구제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동시에 기록물 보존 규정을 바꿔 채용서류를 영구 보존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채용서류는 공공기록물법에 따라 기관장이 영구 보존하는 것으로 정하면 영구 보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 등 사기업에는 공공기록물법을 적용할 수 없다. 고용부도 사기업이 탈락자의 채용서류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채용절차법 등의 개정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채용절차법은 구직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며 “사기업이 탈락자의 개인정보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으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용절차법을 위반하지 않고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예비합격자로부터 별도의 개인정보 수집 등에 동의를 얻어 관리하는 방법도 제기된다. 구직자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개인정보 수집 등에 동의할 수 있으나 구직자에게 ‘희망고문’이 될 수 있고 실제 피해자가 구제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반발이 있는 만큼 얼마나 많은 예비합격자가 개인정보 동의를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