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최태원은 왜 흙수저에 집착하는가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 2018.05.15 05:31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십 여전 일이다. SK그룹의 당돌한 젊은 사원이 공개석상에서 대뜸 물었다. "회장님은 좋겠습니다. 저희처럼 젊은 나이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총수 자리에 오르셨으니까요. 기분이 정말 어떤가요."

애써 신입사원과의 대화를 마련했던 임직원들의 얼굴이 일순간 사색이 됐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에 찬물세례가 아닐 수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눈이 한 곳으로 집중됐다. 모두가 최태원 회장의 입술을 바라봤다.

머쓱해 하던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헛헛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사실 저도 고민입니다. 대신 그런 무게 때문에 겪지 말아야 할 고초(?)도 겪고 참 쉽지가 않습니다. 책임이 크니까 힘들 때가 많습니다."

재벌 회장이라고 해서 용비어천가를 쓰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SK의 최근 성장세를 보면 그 동력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추적하고 싶어진다. 단지 몇 차례의 성공적인 M&A(인수·합병)를 한 것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런 발로에서 보면 최 회장의 행보는 아이러니다. SK가 그룹 전체적으로 성과를 내는 것과 별개로 그는 요즘 사회적 기업에 빠져 산다. 이른바 '돈 안되는 일'에 왜 그리 매달리는지, 처음엔 이미지 메이킹 정도로 폄하했지만 그 수준은 아니다.

기업가 최태원. 인간 최태원을 들여다보다가 그런 맥락의 단서를 찾았다. 물려받을 때부터 순탄치 않았고, 20년 경영의 세월에 두 번이나 크게 실수해 속죄한 그가 이제 무엇을 고민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맞다. 그에겐 돈이 다가 아니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시기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사명(Mission)으로 산다. 인생의 여정은 사명에 열정을 투여해 울고 웃다가 그대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위대한 인간은 그를 켜켜이 쌓아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Calling)을 찾는다.

최 회장은 두 번의 고난을 통해 어쩌면 섭리를 붙든 것일지 모른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금수저로 태어나 그 왕관의 무게를 원망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운명을 받아들이고 가장 우선적인 사회적 필요를 외치고 있다.

우리는 요즘 일부 약탈적 재벌에 진절머리났지만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마저 부정할 순 없다. 공적 영역이 해결치 못한 문제를 개인의 리스크를 짊어지고 시스템 내에서 풀어낼 창업가가 필요하다. 세상을 변화시킬 흙수저를 찾는 일이다.

SK와 그 총수가 붙잡은 가치는 생각보다 위대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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