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 동거한다며 '수군수군'…"가족입니다"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 2018.05.20 05:04

[가족의 탄생-⑤]"동거는 결혼 전 '준비 과정' 아닌 삶의 한 형태"… "가족의 한 형태로 인정해달라" 목소리↑

편집자주 |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사진=이미지투데이
#다큐멘터리 일을 하는 지민과 대학 시간강사로 일하는 철은 연애 8년 뒤 2년째 동거중이다. 이들은 오로지 둘만의 관계에 집중하고 싶어 결혼을 원치 않는다. 한국 사회서 결혼하면 집안 간의 관계에 예속되고 남자에겐 가부장제 안에서의 짐이, 여자에겐 여자로서의 역할이 강요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에게 아이가 생겼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았다. 선천적 이상아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수술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문제는 미혼모의 자녀는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 결국 출생신고 마지막 날, 이들은 고민 끝에 혼인신고를 하고 부부가 됐다. 하지만 어쩐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결혼 제도 안에 들어가지 않고 결혼한 부부들처럼 아이를 키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영화 '두개의 선')

혼자서 밥을 먹는 '혼밥'이나 결혼을 졸업하는 '졸혼' 등은 과거에는 특이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엔 다르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며 다양한 삶의 형태가 인정되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불편하게 바라보는 삶의 방식이 있다. 동거다. 2016년 보건사회연구원이 3만85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다양한 가족의 제도적 수용성 제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동거에 적극 찬성하는 비율은 9.5%에 불과한 반면 적극 반대하는 비율은 22.6%에 달했다.

조금씩 인식이 개선되고는 있지만 과반수 이상은 반대 입장이다. 동거에 부정적인 견해는 2008년(4만2473명 대상) 57.7%, 2016년에는 52%였다. 동거하는 이들은 "동거 가족도 가족"이라며 결혼한 이들과 동등한 혜택을 달라고 강조한다.

◇다양한 삶의 방식 '동거'…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하지 않아"

동거하는 이들은 혼인과 혈연으로만 엮인 사람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게 구시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직장인 신모씨(28)는 "대학가에서 대학생 여자친구와 동거한 지 6개월차다. 동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크게 없었지만, 따로 자취하다보니 월세가 부담스러워 함께 살게 됐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사회적 편견이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신씨는 "고민 끝에 함께 살기로 결정한 것인데, 주변에서 '여자 생각해서 그러면 안된다'거나 '결혼 생각도 없는데 이기적이다' 등 시선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침묵하기로 했다.

신씨처럼 동거하는 이들은 동거가 결혼 전 잠시 스쳐가는 불안정한 형태나 파트너에 대한 부족한 애정이 투영된 구조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섹스칼럼니스트 은하선 작가는 한 방송에서 "현재 5년째 동성 파트너와 동거 중"이라고 밝히면서 "동거는 결혼 전 '준비 과정'이 아니라 삶의 한 형태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동거하는 이를 '가족'으로 인정해달라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 10월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게시판에 "'동반자 등록법' 제정을 촉구한다"는 글이 올라와 약 6만건 서명을 받았다.


청원인은 "결혼을 하지 않고 같이 동거하는 커플, 현행 법 아래선 결혼할 수 없는 동성 동거 커플 등은 병원에서 보호자 동의를 요구하는 상황에 닥치면 난감하다"며 "가족만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동반자가) 보호자가 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지난 대선 이 같은 내용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문화평론가 손희정은 한 방송에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결혼한 커플에게만 사회적 혜택을 제공하는데, 동거 등 새로운 시민결합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동거인들은 신혼부부 대출이나 특별공급 주택 등 정상가족 부부가 받을 수 있는 혜택에서 제외돼있다.

◇다양성 받아들여 저출산도 해결… 동거 인정해 출산율 높인 프랑스
비혼 동거 커플이 가족임을 인정해 이들에게 출산과 육아에서 법적·경제적으로 결혼한 부부와 똑같은 권리를 지원할 경우 '저출산' 문제도 타개할 수 있다.

프랑스는 1999년 '시민연대계약'(팍스·PACS) 제도를 도입했다. PACS는 결혼 여부와 관계 없이 성인 간의 동거관계를 인정해 동거하는 가정에 사회 보장·정부 보조금·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결혼 가정과 똑같이 부여하는 제도다. 이 같은 정책 전환을 통해 1990년대 합계출산율 1.7이던 프랑스는 지난해 2.08로 유럽 최고의 출산율을 달성했다. 프랑스에서 법적으로 혼인하지 않은 산모에게서 태어난 출생아 비율은 56.7%에 달한다.

한국은 법적으로 혼인하지 않은 산모에게서 태어난 출생아 비율이 1.9%에 불과하다. 하지만 동거자들은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적 지원이 나아질 경우 아이를 낳고 싶다고 답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비혼 여성 동거자들의 82.7%가 "자녀를 낳을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현재 동거 중인 여성의 94.5%가 아이가 없지만 임신을 한 경험이 있다는 대답도 31.8%에 달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 근대적 산물로, 결혼 제도권 안의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함이었다"면서 "이제 중산층이 붕괴하고 물려줄 재산이 없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굳이 결혼을 하는 대신 동거를 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곧 '정상 가족'에 대한 환상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거인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정상가족 뿐만 아닌 다양한 가족 형태를 가족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노력하고 있다. 변수정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 부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기본계획'(2016~2020)은 '다양한 가족에 대한 포용성 제고'라는 정책과제를 포함하는 등 정책적으로 바람직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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