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서촌의 족발집과 5월 임시국회

머니투데이 임상연 중견중소기업부장 | 2018.05.08 04:30
“안녕히 계세요”란 인사가 어울리기는 한 걸까.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 과연 위로는 될까. 온갖 상념 끝에 서툰 인사말만 남기고 가게를 지키는 철문을 나섰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가게 앞을 가로막은 탑차 위로 빨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本家 궁중족발.’ 경복궁역 인근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에 위치한 이 가게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상권 내몰림)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된 것은 2년여 전이다.

서촌 상권이 뜨고 가게가 들어선 건물이 팔리면서 불행이 찾아왔다. 새 건물주는 가게주인이 감당하기 힘든 임차료를 요구했다. 보증금은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3.3배, 월세는 294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4배 넘게 올렸다. 주변 시세에 비해 터무니없는 임차료였다. 사실상 가게를 빼라는 얘기였다. 가게주인은 새 건물주의 비상식적인 임차료 인상에 항의도 하고 읍소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법대로 해라” “그 돈에 맞는 곳에 가서 장사해라”와 같은 날 선 답변들만 돌아왔다고 한다. 결국 새 건물주는 명도소송을 냈고 법원은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다. 계약기간이 5년 지나 법적 보호대상이 될 수 없었다.

청와대 밑자락, 서촌 상권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새 건물주는 지난해 10월부터 수차례 강제집행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가게주인 김씨는 네 손가락이 부분절단되는 사고까지 당했다. 가게 앞에 탑차를 세우고 유리문에 철문을 덧댄 것도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강제집행이 두려워서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 4일에도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철문을 두드리고 신분을 확인한 후에야 어둠 속 가게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시민·사회단체 등 연대인들의 도움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생계가 달렸으니, 어떻게든 끝까지 버티려고요.”

법치주의 사회에서 ‘법대로’라는 말은 명쾌해 보인다. 하지만 법이 모든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갑을 구조처럼 힘의 차이가 분명하거나 기본 전제가 왜곡된 경우 법도 ‘기울어진 운동장’일 때가 많다. 이 경우 ‘법대로’라는 말은 합법이란 울타리에서 행해지는 또 다른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에 맞는 잣대로 끊임없이 법을 고쳐 나가야 하는 이유다. ‘디케(Dike)의 저울’이 수평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공평한 기회·공정한 과정·정의로운 결과’가 있는 사회를 만드는 과정이자 입법부인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국회는 어떤가. 지난달 국회는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했다. 여야가 개헌안, 특검 등을 놓고 정쟁만 일삼다가 본회의를 한 차례도 열지 못해서다. 이 때문에 현재 계류 중인 법안만 9500건에 육박한다. 이중에는 ‘젠트리피케이션방지법’(지역상권 상생 및 활성화법)을 비롯해 ‘생계형적합업종특별법’ ‘중소기업기술보호법’ ‘대규모유통업 거래공정화법’ 등 시급한 민생법안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최근 1년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회의원’ 제목으로 올라온 청원 및 제안만 2920건에 달한다. 대다수가 민생은 팽개치고 당리당략만 좇는 국회의원들을 질타하거나 징계해달라는 내용이다. 심지어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달라’는 청원에는 27만명 넘는 국민이 참여했다. 국회의원의 존재이유를 묻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5월 임시국회가 정상화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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