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커버린 아이를 보며 후회하는 것들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 2018.05.05 07:31

[줄리아 투자노트]

2010년 중국 상하이 엑스포 단체여행에 아들과 함께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단체여행객 중 아들보다 어린 남자아이가 2~3명 있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그 아이들이 상점에서 조잡한 비행기 모형을 샀는데 아들도 사달라고 했다. 한국 돈으로 5000원 정도였을까, 적은 돈이었지만 나는 쓸데없다며 끝까지 안 사줬다. 아이 버릇을 잘 들이려면 단호해야 한다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들은 다른 아이들의 비행기를 보며 풀이 죽어 있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상하이 엑스포 하면 이 기억이 떠오르는데 묘하게 내 6살 유치원 크리스마스 때 행사 장면이 중첩된다. 그 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산타의 선물이었다. 이미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며칠 전부터 엄마 앞에서 “산타할아버지가 공주 인형을 줬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 날 내가 받은 포장 박스는 납작한 사각형이었다. 딱 봐도 인형이 들어갈 수 없는 크기였고 역시나 선물은 스웨터였다. 엄마는 “지금 입기에 딱 좋네”라며 옆에서 흥을 돋우려 했지만 난 스웨터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엄마는 어린 내게, 내가 원하는 선물이 아니라 엄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선물을 사줬다. 그게 싫었는데 나 역시 시시껄렁한 장난감과 만화 캐릭터 카드가 보물이었던 어린 아들에게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선물을 주로 했던 것 같다. 어린이날, 이제는 현금이 제일 좋은 나이로 커버린 아들을 보니 싸구려 장난감에 세상을 다 얻은 듯 좋아하던 어린 아들이 그리워지며 내가 참 아들 마음을 무시하며 나 좋은 대로만 키웠구나 후회가 든다.




◇내가 옳고 아이는 틀렸다는 생각=더 오래 살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늘 내가 옳고 아들은 어려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쓸데 없는데 돈을 써?”라든지 “너 커서 고생하지 말라고 공부하라는 거야”, “크면 엄마 말이 다 맞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 넌 그냥 엄마 하라는 대로 해” 라는 말들로 7살 아들, 10살 아들, 12살 아들의 세계를 무시했다.


그 나잇대에 소중한 것이 있고 경험해야 할 것이 있고 시행착오 속에 배워야 할 것이 있는데 어른의 입장에서 소중한 것을 주입하고 어른의 입장에서 필요한 경험과 쓸데 없는 경험을 재단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낭비라고 몰아붙이고 가능한 실수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며 내 방식대로 끌고 오려 했다. 이제 나이 들어 보니 내 시각이 아니라 종종 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줘야 했는데 5000원짜리 비행기 모형이 아들 버릇을 얼마나 나쁘게 한다고 안 사줬는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일정에 아이를 끼워 맞추는 자기 중심주의=도턴 와일더의 ‘우리 마을’이란 희곡을 보면 어린 에밀리가 죽은 후 가장 좋았던 하루를 다시 살 기회를 얻는다. 에밀리는 12살 생일로 돌아가 부모님을 다시 만나지만 엄마는 에밀리의 생일 케이크를 만드느라 너무 바쁘고 아빠는 돈 버느라 정신이 없어 에밀리를 쳐다보며 얘기할 시간이 없다. 엄마, 아빠 모두 에밀리를 위해 케이크를 만들고 돈을 벌지만 에밀리를 위하는 수단인 케이크와 돈에 정신이 팔려 정작 목적인 에밀리에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다.

관심이란 상대방의 시간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시간에 잠시라도 머물러 있어주는 것인데 우리는 자신의 시간이 너무 중요해 남이 나의 시간 속에 들어와 주길 바랄 뿐 남의 시간에 맞춰주려 하지 않는다. 아이와 대화할 때도 선생님들이 어떤지, 어떤 친구와 친한지, 학교에서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등 자기 관심사만 물어보고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이나 아이돌 얘길 하면 쓸데없는 소리라며 지겨워한다. 이제 아들이 자기 시간 속에 엄마가 들어오는 것조차 반기지 않는 나이가 되고 보니 내 시간을 온전히 비워 아이의 시간 속에 쏙 들어가 아이의 관심사에 내 마음을 맞춰 함께 해준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우리는 오래 산 것, 어른이란 것, 돈이 있다는 것, 내 집이란 것 등등이 다 자녀에게 권세가 돼 자녀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멋대로 하는 경향이 있다, 때론 버릇을 들이고 훈육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의지와 관심을 꺾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가르칠 때도 아이의 마음을 한번은 생각해보며 대화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무조건 어른 입장에서 안 된다고만 한다. 어린이날을 맞아 놀러 가는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 어른 ‘갑질’을 그만두고 아이 입장으로 하루를 살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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