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 갑질 논란에 이어 명품 밀수와 관세포탈 의혹을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증거 인멸 정황이 포착됐다. 파쇄된 문서가 자택에서 무더기로 나왔고, 오래된 귀금속 보증서 등도 버려졌다. 관세청, 경찰 등 관계 당국이 전 방위 압박을 가하자 이들이 주요 혐의와 관련된 증거를 없애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파쇄된 문서는 50리터(L) 규모의 반투명 비닐봉지나 대형 쇼핑백 등에 담겼다. 인쇄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조 회장 자택에서 나온 파쇄 문서 규모는 취재진이 직접 확인한 것만 A4 용지 1000장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진이 직접 파쇄 문서 일부를 확인한 결과, 통장을 비롯해 손으로 쓴 메모, 금융당국 고위관계자의 수년 전 명함 등이 발견됐다. 1970~1980년대 발행된 고가의 귀금속 품질보증서 3장도 눈에 띄었다. 보증서에 적힌 3개의 물품은 현재 시세로 총 7000만원에 달했다.
가장 오래된 보증서는 1977년 4월 미도파백화점 5층 금은방에서 발급된 것으로 330돈짜리 ’아주발 대접’이었다. 아주발 대접은 아이의 밥그릇과 국그릇 등 식기를 의미한다. 보증서가 오래돼 금의 순도는 확인이 어려웠다. 순금이라면 현재 시세로 5600만원 정도다.
1983년 11월 롯데백화점 5층 금은방과 1983년 10월 롯데호텔 1층 르미에르에서 발급된 품질보증서도 발견됐다. 두 보증서의 물품은 모두 50돈(187.5g)짜리 순금(99%) 거북이로 하나에 1000만원 정도다.
다량의 파쇄 문서 배출을 놓고 한진그룹 총수 일가가 범죄와 연관된 서류를 파손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취재진이 확인한 폐기물은 관세청의 자택 압수수색 이후 나왔다.
관세청은 21일 조 회장과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둘째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사는 평창동 자택을 비롯해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자택,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자택 등을 압수 수색했다. 취재진이 포착한 파쇄 문서들이 일련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관세청이 놓친 자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 회장 자택에서 이 같은 파쇄 문서들이 나오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증언도 나온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총수 일가의 갑질 의혹을 내사하고 관세청이 압수수색을 하는 와중에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평창동 조 회장 자택에서 근무 경험이 있는 A씨는 “일하는 동안 파쇄한 문서를 버린 기억이 전혀 없다”며 “이명희 이사장이 평소 포장박스 하나도 마음대로 못 버리게 했기 때문에 확실히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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