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4시35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배석자 없이 판문점 자유의 집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도보다리로 향했다. 청와대는 '친교산책'이라고 명명했지만 사실상 오전 첫 번째 정상회담에 이은 두 번째 정상회담이었다.
50여 미터의 파란색 도보다리를 함께 걷던 두 정상은 다리 끝에 마련된 벤치에 마주보고 앉았다. 머리위로 따뜻한 봄볕이 쏟아졌고, 테이블 위엔 목을 축이기 위한 차가 놓여져 있었다.
두 정상은 이후 30분간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주로 문 대통령이 이야기를 하면 김 위원장이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은 종종 손 동작을 곁들이며 무언갈 설명하는 듯 했다. 때로 차를 마시며 김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왼 손을 쭉 펴 테이블을 잡기도 하고, 왼쪽 다리를 폈다가 접는 모습, 안경을 고쳐쓰는 모습도 포착됐다.
마치 유리벽이 놓인 듯 했다. 전 세계는 생방송으로 두 사람의 '모습'만 지켜봤다.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새가 지저귀는 소리, 풀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바람소리, 멀리 떨어져 지켜보는 취재진 소리만 스피커를 채웠다.
도보다리 산책 생중계는 '방송 사고' 가 아니었다. 더 강력한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린 남북 분단의 상징 '판문점' 위에서, 분단의 당사자인 남북 정상의 독대는 '한반도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라는 상징을 간결하게 각인시켰다.
문 대통령은 항상 "북핵 문제는 우리 한반도의 문제다. 우리가 그 문제의 주인이고 당사자다.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날 오전 정상회담에 앞선 모두발언에서도 문 대통령은 "오늘의 주인공 김 위원장과 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도 깊은 공감대를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 공동 발표석에 서서 "마주치고 보니 북과 남은 역시 갈라져 살 수 없는 형육이고 동족이라는 걸 가슴물클하게 절감했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이날의 만남과 판문점 선언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위대한 역사는 저절로 창조되고 이룩되지 않으며 그 시대 인간들의 성실한 노력, 뜨거운 숨결의 응결체다"며 "외풍과 역풍도 있을 수 있고 좌절과 시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통 없이 승리가 없듯이, 시련 없이 영광이 없듯이, 언젠가는 도전을 이겨내고 민족의 진로를 헤쳐간 날들로 즐겁게 추억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판문점 선언은 두 정상의 민족 자주 의지를 명문화 했다. 선언 1조 1항은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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