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시력 잃은 뒤 좌절할 시간이 없었어요"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 2018.04.25 05:40

[피플] 컴퓨터 읽어주는 선생님… 삼성전자 수원사회공헌센터 김병호씨

삼성전자 수원사회공헌센터 김병호씨(52). /사진제공=삼성전자

그가 다섯살배기 아들과 돌쟁이 딸, 아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97년 초 어느 날이었다. 진단명 포도막염. 3년의 치료에도 결국 시력을 완전히 잃은 날이다. 나이 서른 한 살 때였다.

낯선 병명을 처음 들었을 때 누구라도 그렇듯 삼성전자 수원사회공헌센터 김병호씨(52) 역시 청천벽력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절망적이었다. 지팡이를 이용해 걷고 점자를 읽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순탄했을 리 없다.

김씨는 "희망적인 게 하나도 없었다"고 돌이켰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희망도 없었지만 좌절할 시간도 없었다."

그는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회사에 시각장애인 정보화교육센터 건립을 제안했다. 재활 합숙 당시 접한 '스크린 리더'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3년 가까이 아무 것도 못 읽다가 소리로 신문기사도 찾아보고 책도 읽을 수 있으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단절된 세상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제안이 받아들여지리란 확신은 없었다. 돌아보면 삼성전자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 게 김씨 입장에선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삼성전자 수원사회공헌센터 이수경씨는 "당시 제안이 회사의 사회공헌 철학과 잘 맞아떨어졌다"며 "시각장애인 정보화교육 사업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게 그 제안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1997년 오프라인 컴퓨터 교실로 시작한 시각장애인 정보화교육 공헌사업은 2002년 시각장애인들이 집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e러닝 사이트 '애니컴'으로 발전했다. 김씨는 애니컴 개설과 시각장애인용 교육 콘텐츠 제작에 앞장섰다.

김씨가 '컴퓨터 읽어주는 선생님'으로 불리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다. 8000명이 넘는 시각장애인이 애니컴을 거쳤다. 지금도 애니컴 사이트에 접속하면 들을 수 있는 "삼성애니컴입니다"라는 앳된 목소리의 주인공은 2002년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김씨의 딸 주영씨다.

삼성전자 시각장애인 정보화교육센터는 2011년 스마트폰 대중화와 맞물려 컴퓨터뿐 아니라 각종 IT 기기를 교육하는 곳으로 확대됐다.

김씨는 인생의 결정적인 장면으로 결혼해 가족을 꾸린 것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꼽는다. 시력을 잃으면서 다른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한다. 김씨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좀더 편하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보니 스스로도 더 나은 삶을 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 20일 '제38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았다. 1996년 9월 제1회 루즈벨트 국제장애인상 수상을 계기로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을 발굴해 정부가 시상하는 행사다.
김병호씨와 딸 주영씨. 2018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성화봉송 주자로 나섰다. /사진제공=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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