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자전거族, 오늘도 '목숨' 걸고 달린다

머니투데이 남궁민 기자 | 2018.04.22 05:32

[자전거가 쓰러진다-②] 공간·배려·신호 없는 '3無' 자전거 도로

편집자주 |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동대문역 인근 자전거 우선도로 모습. 차로가 좁고 차량 통행량이 많아 자전거를 타기 힘들다. /사진=남궁민 기자
지난 8일 광화문과 종로6가를 잇는 2.6㎞길이의 자전거 전용차로가 개통됐다.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이 도로는 보행자와 자전거에 친화적인 도시를 표방하는 '박원순표 서울'을 상징한다. 시는 공유 자전거 '따릉이'를 도입하고 자전거 도로가 확장하는 등 자전거 인프라 확충이 공을 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건 어떨까? 17일 기자가 직접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광화문까지 약 9㎞의 거리를 자전거를 이용해 출근해봤다.



차로의 불청객·인도의 무법자…어디로 가지?

"부장, 8시에 출발합니다. 1시간 조금 안 걸릴 것 같습니다."

17일 오전 8시 일정을 보고 한 뒤 집 근처 따릉이 대여소를 향했다. 지도 앱에 따르면 회사(광화문 소재)까지 예상 소요시간이 40분이었기 때문에 출근시간인 9시에 맞춰 가기에 넉넉한 시간이었다.

자전거를 빌리고 차로에 진입하려 하면서부터 어려움이 시작됐다. 현행법상 자전거는 인도에서 운행할 수 없다. 자전거 도로가 없으면 차로를 이용해야한다. 차량들은 왕복 4차선 이문로를 빠르게 달렸다. 몇차례 시도한 끝에 3차로에 진입했다. 쌩쌩 내달리는 차량에 공포감이 몰려왔다.

대중교통환승센터와 청과물도매시장이 있는 청량리역 인근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고 인도로 올라왔다. 좁은 인도에서는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도 어려웠다. 인도에서도, 차도에서도 자전거는 불청객이었다. 출발한지 벌써 40분이 지났지만 겨우 1.6㎞를 오는데 그쳤다.


자전거 우선도로…자전거는 '우선'이 아니였다


지난 17일 서울 용두동 풍물시장 인근 자전거 우선도로. 주차된 차량과 운행중인 차량, 오토바이로 혼잡하다 /사진=남궁민 기자
주변 자전거 우선도로를 검색했다. 용두역 인근 청계천을 따라 표시된 자전거 우선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한적한 청계천변을 보고 자전거를 끌고 내려갔다. 하지만 곧바로 관리자에게 제지 당했다. 청계천 옆 길에서 자전거는 탈 수 없었다. 서울시는 올 11월 청계천변 자전거 도로를 개통한다고 밝혔다.

다시 자전거 우선도로인 청계천로로 올라왔다. 하지만 2차선 도로의 한쪽은 인근 상인들의 트럭과 적재물이 점령했다. 나머지 1개 차로를 달리는 차량과 경적을 울리며 뒤에서 나타나는 오토바이에 놀라 다시 자전거 타기를 포기했다. 자전거 우선도로에서 자전거는 전혀 '우선'이 아니였다.


율곡로와 청계천로가 가로지르는 사거리 모습. 직진으로 달리는 자전거와 옆에서 좌회전 하는 차량이 부딪힐 위험이 있다. 사진=남궁민 기자
2㎞를 걸어 동대문역에 도착했다. 다시한번 자전거를 탔다. 청계천로와 율곡로가 가로지르는 사거리에 붉게 칠해진 자전거 도로를 타고 달리던 찰나 갑자기 좌회전 차량이 눈 앞에 나타났다. 자전거를 급하게 세웠다. 사고가 날 뻔한 순간이었다.

가장 안쪽에 설치한 자전거 도로는 직진차선으로 설계됐지만, 바로 옆에 좌회전 차로를 만들어 뒀기 때문에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전거 운행자를 위해 별도의 신호체계도 도입한 해외와 달리 도로만 설치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자전거 이용자를 고려한 신호체계 조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현재 경찰청과 협의하고 있고 이달 중 대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시간 만에 포기…'자전거 도로'만 있었다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열린 종로 자전거전용차로 개통 기념 자전거퍼레이드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힘차게 출발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부장, 더 이상 못가겠습니다. 지하철로 출근하겠습니다."

결국 오전 9시43분 동대문역 인근 대여소에 자전거를 반납했다. 출발 후 2시간 가까이가 지났지만 겨우 5.6㎞를 오는데 그쳤다. 내내 위협을 느끼며 긴장한 탓에 기진맥진했다. 자전거 출근은 도심 인근에 사는 소수의 시민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자전거도시 서울'은 먼 얘기였다.

이날 경험한 자전거 도로는 차선만 그어져 있을 뿐 명확히 구분되어있지 않아 위험했다. 도로 폭과 차량 통행량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정된 자전거 우선도로는 유명무실했다. 자전거에 대한 고려가 없는 신호체계는 오히려 사고위험을 높였다. 매년 자전거 도로의 총 연장을 늘고 있지만 쉽게 체감할 수 없는 이유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도로 인근 상인들과 협의를 거쳐 '도로 다이어트'를 추진 중"이라며 "이를 통해 자전거 우선도로를 전용도로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호나 도로 구조 등 고쳐야 할 점이 많지만 궁극적으로 운전자들의 의식이 바뀌어야한다"며 "해외처럼 자전거 이용자를 배려하는 운전문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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