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받아 좋아요!"…장애인 택배기사, 방긋 웃었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18.04.19 04:53

발달장애인 택배기사 따라가보니…당일 배송률 99%, 사람 만나며 쾌활해지고 지능 좋아져

2013년 11월부터 택배 배달을 한 발달장애인 이민선씨(27)가 고객에게 택배를 건네고 있다. 환한 웃음도 잊지 않았다./사진=남형도 기자
"계세요? 택배 왔습니다!"

18일 오후 1시40분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 파란 조끼를 입은 이민선씨(27)가 양팔 가득 택배상자 3개를 안고 좁다란 복도를 걸었다. 다부지고 빠른 발걸음이었다. 그리곤 한 집 앞에 멈췄다. 문을 정확히 세 번, 힘차게 두드리며 택배가 왔음을 알렸다. 인기척이 없자 그는 한 번 더 반복했다. 잠시 뒤 집주인이 나오자 이씨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눈가의 해맑은 눈주름이 보는 이를 기분좋게 했다. 이씨는 큰 상자 2개를 두 손으로 차분하게 건네고, 어디에 사인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줬다. 집주인 A씨는 "요즘 택배기사들은 택배를 현관문 앞에 집어던지고 가는데, 어찌나 친절하고 싹싹한지 매번 기분이 참 좋아진다"고 칭찬했다.
2013년 11월부터 택배 배달을 시작한 발달장애인 이민선씨(27)가 30분 만에 한 동에 배달할 택배 18개를 모두 전달했다. 비워진 택배 배달상자./사진=남형도 기자

6년째 이 동네에 택배를 배달한 이씨는 그야말로 '베테랑'이다. 이날 한 동에 택배 18개를 배달하는데 30분도 안 걸렸다. 자그마한 체구라 잘할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무거운 택배 캐리어를 손쉽게 끌고 한 동에 도착한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부터 내려오며 주인에게 능숙하게 건넸다. 부재 중인 택배는 경비실에 맡기고, 우편함에 택배가 왔음을 알리는 보라색 포스트잇을 꼼꼼히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경비원 김주은씨는 "처음에 잘할 수 있을까 생각도 했는데 지금은 마음 편히 바라볼 정도로 정말 잘한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집에 없는 고객에게는 택배가 왔음을 알리기 위해 우편함에 '택배'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사진=남형도 기자

사실 이씨는 지적장애 2급(지능지수·사회성숙지수가 35 이상 49 이하)이다. 택배 배달을 하기 전엔 매일 재활시설에 틀어박혀 양말을 만드는 일을 했다. 2013년 11월부터 택배 일을 시작한 뒤 자신감도 붙고 사람들을 대하는 법도 배웠다. 택배 1개를 배달하고 버는 돈은 660원 남짓. 통상 하루 2시간 정도 일하고 남은 시간은 쇼핑백을 만든다. 그렇게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노원구립장애인일자리센터서 일하고 버는 돈은 월 40만원 정도다. 이씨는 "고객님들이 잘한다고 칭찬해줄 때 기분이 가장 좋다"며 활짝 웃었다.
18일 오후 1시. 노원구립장애인일자리센터에 CJ대한통운 택배가 도착하자 발달장애인 기사들이 동별로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발달장애인이 택배를 배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3년 11월부터다. 전국에서도 첫 사례다. 노원구립장애인일자리센터와 CJ대한통운이 계약하면서 노원구 중계동 내 아파트단지 2600가구를 대상으로 시작했다.

시행 초기에는 우려도 컸다. "왜 굳이 위험하게 이런 일을 하느냐"며 핀잔을 듣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재환 센터장에게는 소신이 있었다. 이 센터장은 "비장애인들이 일을 다 해주는 것이 아닌, 발달장애인 스스로 일을 해내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이에 택배를 해보자고 밀어붙였다.

처음에는 글씨 모르는 사람, 힘 잘 쓰는 사람, 말 잘하는 사람 등 발달장애인 4~5명이 함께 다니며 배달을 익혔다. 하지만 50번씩 같은 동을 오가면서 금세 잘하게 됐다. 불과 1년 만에 5000가구로 구역을 2배 확장했다. 이후 2016년 5월 박원순 서울시장과 CJ대한통운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사업을 확대키로 했다. 월 평균 매출 수익도 2014년 382만원에서 지난해 620만원으로 대폭 늘었다. 지금은 발달장애인 기사가 혼자 다녀도 오후 5시 전에 모든 물량을 소화할 정도로 전문가가 됐다.

18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발달장애인 택배기사와 직접 동행해봤다. 오후 1시, 택배 차량이 그날 물량 700여개를 하차하자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밑으로 뛰어내려갔다. 잔뜩 쌓여 있던 택배 꾸러미는 허은정 대리(28)의 지휘 하에 30분만에 동별로 분류가 끝났다. 택배 스티커를 떼고 어디로 배달할지 아파트 층별로 장부를 적는 일이었다.


발달장애인 택배기사 남영주씨는 405동 배달 담당이다. 18일 배달할 405동의 배달 리스트를 크고 또박또박 예쁜 글씨로 적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405동 배달 담당인 남영주씨(31·지적장애 3급)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또박또박, 예쁜 글씨로 자신이 가야할 집주소와 이름을 하나씩 채워갔다. 2013년부터 이 일을 해왔다는 남씨는 택배 일이 왜 좋냐는 물음에 "고객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서 좋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행복하다"며 "가끔씩 고맙다며 과자를 줄 때도 기분이 좋다"고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발달장애인에게 택배 일자리는 큰 의미가 됐다. 우선 자립을 위한 일자리 측면이다. 이 센터장은 "일반인 취업률이 60%, 장애인 취업률이 40% 정도인데 발달장애인 취업률은 20%도 안된다"고 설명했다. 택배를 배송하고 난 뒤 느끼는 성취감, 자부심도 대단히 높다. 이 센터장은 "바깥으로 나가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훨씬 쾌활해지고 지능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지적장애 2급인 허은정 대리(28·가운데)는 인강원에서 폭행 등을 겪은 뒤 2014년 노원구립장애인일자리센터로 왔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월 150만원을 벌 정도로 택배 작업관리를 능숙하게 잘한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면서 그는 직원 중 허은정 대리를 모범사례로 꼽았다. 지적장애 2급인 허 대리는 6살 때(1996년) 아버지를 여의고 생활고로 인해 인강원 시설에 입소했다. 그의 어머니는 파출부 일을 하고, 허 대리는 24살까지 세탁작업과 주방보조일을 해왔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렸고 쇠로된 자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 인강원이 장애인 폭행 문제로 운영이 정지되면서 2014년 노원구립장애인일자리센터에 입소했다. 허 대리는 입소 당시만 해도 월급이 12만원에 불과했지만 하루에만 혼자서 택배 4~5개 동에 70~78개를 배달할 정도로 업무 능력이 뛰어났다. 다른 발달장애인 택배기사가 1~2개 동에 20여개 배달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그의 월급은 올해부터 157만원으로 올랐고, 장애인임대아파트에 집도 한 채 얻어 독립해 생활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택배 사업은 최근 논란이 불거진 '다산신도시 택배'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도 꼽힌다. 일정 거점에만 택배를 배달해주면, 발달장애인 기사들이 능숙한 실력으로 동네 집집마다 배달해주기 때문. 최근 호응을 얻고 있는 실버 택배와 같은 이치다. 실제 발달장애인 기사 당일 배달률은 99%, 비장애인 기사 당일 배달률은 95%로 실적 면에서도 경쟁력이 좋다.

이 같은 호응에 힘입어 서울시는 발달장애인 택배사업을 올해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 노원·송파·강서·금천 등 4개 권역에 7개소로 택배 거점을 확대하고 일자리 수도 현재 23개에서 100개까지 늘린다. 노명옥 서울시 장애인일자리창출팀장은 "발달장애인들이 일자리를 갖게 되면 사회적 비용도 그만큼 줄어든다. 발달장애인을 그냥 두면 보호비용이 드는데, 일을 하면 발달장애인 스스로 돈도 벌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의 보호자도 일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정책의 효용 가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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