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사랑보다 돈"… 이혼은 현실이다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이보라 기자, 최동수 기자, 이영민 기자, 방윤영 기자 | 2018.04.10 04:10

[이혼,'쩐'의 전쟁] (종합)

편집자주 | 결혼은 현실이다. 이혼도 현실이다. 살아온 정(情)보다 '돈'이 앞선다. 사랑해도 빚 때문에 갈라서고, 이혼하고 싶어도 집 때문에 같이 산다. 자식 때문에 이혼 못하고, 이혼 해도 자식이 어깨를 짓누른다. 부부가 번 돈보다 부모들이 물려준 돈이 더 중요한 요즘. 이혼을 통해 달라진 세태를 들여다 본다.



돈 없어 같이 산다...이혼률 10년새 절반 '뚝'━


[이혼,'쩐'의 전쟁①]서울 협의이혼 10년새 급감…"결혼이 줄어드니 이혼도 준다"



이혼이 줄고 있다. 반길 일이 아니다. 부부 금슬이 좋아져서라면 다행이겠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자녀들의 늦은 취업과 결혼이 부모의 이혼을 막고 있다. ‘캥거루 자녀’를 부양하는 부담 탓에 따로 살지 못하고, 자녀 결혼 전까지 갈라서지도 못한다. 이혼을 안 하는 게 못 한다는 얘기다.

◇서울 협의이혼 10년새 43% 급감

9일 법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이혼소송은 1만1500건에서 7500건으로 35% 줄었다. 부부 동의 아래 이뤄지는 협의이혼은 무려 43%나 급감했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이혼사건이 크게 줄면서 4개 합의 재판부 중 하나를 없애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 뿐이 아니다. ‘2017년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국 시·군·읍·면 이혼(이혼소송·협의이혼 포함) 접수건수는 2007년 12만4225건에서 2016년 10만8853건으로 12.4% 감소했다. 건수만이 아니라 이혼율 자체도 떨어지고 있다. 기혼자 1000명당 이혼 건수를 뜻하는 유배우 이혼율은 2008년 4.9건에서 지난해 4.4건으로 10년새 10% 줄었다.

자녀의 취업이 늦어지면서 이미 갈라서기로 결심한 부부들도 이혼을 미루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만 15∼29세 청년 실업률은 2008년 7.1%에서 지난해 9.8%로 뛰었다. 양나래 변호사(법무법인 라온)는 “자녀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는 기간이 예전보다 늘어난 것이 이혼 감소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뒤늦은 취업은 만혼으로 이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남성의 초혼 연령은 2008년 31.4세에서 지난해 32.9세, 같은 기간은 여성은 28.3세에서 30.2세로 높아졌다.

자녀가 결혼 후 독립하기 전까지 이혼을 미루자는 전통적인 정서가 작용하면서 부모의 이혼도 자연스레 늦어지고 있다. 실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남성의 평균 이혼 연령은 44.3세에서 47.6세로, 여성은 40.5세에서 44세로 높아졌다.

가사 전문 조혜정 변호사(조혜정법률사무소)는 “생활물가와 주거비 상승으로 가족이 함께 살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버거운데 자녀 부양 기간까지 길어지면서 생활비와 주거비를 따로 부담해야 하는 이혼을 결심하기 더욱 어려워졌다”며 “이혼 상담을 하러 왔다가 자녀 부양 문제 때문에 답답해하다 그냥 돌아가는 부부들이 많다”고 했다.



◇이혼 대신 상간자 민사소송

간통죄 폐지도 이혼 감소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2015년 2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바람을 피운 배우자를 형사 처벌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배우자에게 형사소송을 거는 대신 배우자의 간통 상대인 상간자에게만 민사소송을 거는 경우가 늘었다. 대개 배우자 형사소송은 이혼을 전제로 하는데, 상간자 민사소송은 그렇지 않다. 양 변호사는 “요즘은 이혼소송보다 상간자 민사소송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시차의 문제는 있지만 결혼 자체가 줄어드는 것도 이혼 감소와 무관치 않다. 지난해 국내 혼인 건수는 26만4500건으로 2008년 대비 19.3% 줄었다. 이현곤 변호사(새올법률사무소)는 “결혼 자체가 줄어드는 만큼 앞으로 이혼도 당연히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서초동의 한 이혼사건 전문 변호사는 “이혼소송에서 이름을 날렸던 A변호사가 사건이 줄면서 최근 좁은 사무실로 이사를 했다”며 “20년 이상 경력의 B변호사도 높은 연차의 ‘인건비 감당이 안된다’며 베테랑 변호사들을 모두 내보내고 저연차 변호사들로 자리를 채웠다”고 귀뜸했다. 그러면서 “이혼 사건은 줄어드는데 로스쿨을 통해 신규 변호사들이 쏟아지면서 이혼소송 관련 변호사 시장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이혼 감소로 가사 전문 변호사들의 주력 사건도 바뀌고 있다. 이 변호사는 “이혼 건수는 줄어드는 반면 상속이나 후견 관련 사건은 늘어나는 추세”라며 “고령화 시대를 맞아 이혼 대신 상속 등의 사건에 집중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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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상 기자, 이보라 기자



"집값 안 오를 땐 이혼도 안 한다"



[이혼, '쩐'의 전쟁②] 집값 급등해 나눌 재산 늘면 이혼도 증가

집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걸까? 집값이 안 오를 땐 이혼도 안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반대로 집값이 크게 오를 땐 이혼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이 떨어지면 가정불화로 인해 이혼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게 통설이었지만 연구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최석준 서울시립대 교수와 채수복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전세 및 매매가격 변동이 이혼율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에 따르면 집값 상승률과 이혼율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1997~2014년 주택 실질매매가격 변동률과 이혼율 간의 결정계수(R²)는 0.93으로 나타났다. 결정계수는 두 변수 사이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상관계수의 제곱으로, 1에 가까울수록 상관관계가 높다는 뜻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주택매매가격 상승률은 2008년 3.1%에서 2011년 6.9%로 고점으로 찍은 뒤 안정세로 접어들어 지난해엔 1.2%로 둔화됐다. 한편 배우자가 있는 인구 1000명당 이혼건수를 뜻하는 유배우 이혼율은 2008년 4.9건에서 지난해 4.4건으로 떨어졌다. 집값 상승률이 둔화되는 동안 이혼율도 낮아진 셈이다. 반면 전세값 상승률은 이혼율과 별다른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집값 상승률과 이혼율이 동조화된 원인에 대해 "집값이 크게 오를 경우 이혼시 남녀가 각자 나눌 재산이 늘어나 이혼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반면 집값이 떨어지면 이혼시 분배할 몫이 줄어 이혼을 보류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주택이 우리나라 가계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이혼 결정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가사소송 전문 조혜정 변호사(조혜정 법률사무소)는 "실제로 집값은 이혼 결정에 중요한 변수"라며 "이혼과 함께 집을 판 돈을 나눠가졌을 때 각자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확보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이혼을 결정하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주택 구매시 부모로부터 받은 돈이 많았다면 이혼을 위한 재산분할 과정에 적잖은 진통이 따른다. 부부 공동명의로 주택의 지분을 각각 50%씩 소유하고 있더라도 한쪽 부모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이 클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가사소송 전문 이현곤 변호사(새올 법률사무소)는 "부동산의 경우 개인 재산과 집안 재산의 구분이 어렵다보니 이혼을 위한 재산분할이 집안간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경우 이혼 자체가 늦춰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보라 기자



"100세 시대, 아직 안늦었다"…이혼? 이젠 '졸혼'



[이혼, '쩐'의 전쟁③] 이혼 부부 3쌍 중 1쌍이 20년 이상 부부생활


#김모씨(65)와 이모씨(여·62)는 결혼 33년 만인 지난해 10월 '졸혼'(결혼을 졸업한다)에 합의했다. 법적으로는 혼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부부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졸혼 계약서에는 서로의 이성 친구 만남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일주일에 1번만 귀가하면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결혼해 출가한 자녀들도 김씨와 이씨의 졸혼을 지지했다.

#35년차 부부 이모씨(71)와 박모씨(여·70)는 지난해 5월 이혼했다. 부부는 평소 경제적인 이유로 다퉜는데 이씨는 다툴 때마다 박씨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 박씨는 괴로웠지만 아들과 딸을 보며 견뎠다. 결국 박씨는 자녀들이 모두 결혼하자 이혼을 결심했다.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하다 각자의 삶을 찾아가기 위해 이혼하는 이른바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 지난해 이혼 부부 3쌍 중 1쌍이 20년 이상을 함께한 부부다.

이달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 건수 10만6000건 가운데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이 3만3100건으로 31.2%를 차지했다. 30년 이상 부부의 이혼만 1만1600건으로 전체 10.9%다.

황혼이혼과 더불어 졸혼도 늘고 있다. 사회적인 시선을 의식하거나 재산분할, 소송 등 복잡한 이혼 절차를 꺼리는 부부들이 이혼 대신 졸혼을 선택한다.

최강현 의정부지방법원 가사조정위원(부부행복연구원 원장)은 "사회적 지위가 있고 경제생활이 안정된 부부일수록 주변 시선을 의식해 이혼 대신 졸혼을 많이 선택한다"며 "이혼조정 때 한쪽이 이혼이 절대 안 된다고 하면 조정이 결렬되고 재판으로 가게 되는데 졸혼은 이럴 때 차선책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황혼이혼과 졸혼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건 베이비붐 세대(1946년~1965년생) 남성들의 은퇴시기와 맞물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1946년생이 59세가 되는 2005년에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비중이 전체의 20%를 돌파했고 지난해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베이비붐 세대는 가부장제 문화가 익숙한 세대로 남성은 '경제활동'을 여성은 '집안일'을 요구받았다. 이 세대 남성들은 은퇴한 후에도 아내에게 집안일을 요구하지만 아내는 더 이상 과거의 여성이 아니다. 가정에 헌신했던 아내는 이제 독립적인 삶을 꿈꾼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남편에게 더이상 기댈 이유도 크지 않다.

강희남 한국전환기가정센터포럼 대표는 "베이비부머 세대 남성은 은퇴 후 부인에게 의지하려고 하지만 부인은 더는 가정에 얽매이길 싫어한다"며 "딸들이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을 간접 경험한 베이비붐세대 어머니들은 이제 남은 수십년을 자신을 위해 살아보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혼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변하고 있다. 김신혜 Yk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과거에는 이혼이 흠이 되고 자녀에게 큰 짐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참고 사는 게 오히려 자녀들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20년 동안 가정주부만 했어도 재산분할 할 때 기여도가 높아 최근에 재산분할 하면서 이혼하는 노부부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성들이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100세 시대인 요즘은 은퇴 후 20∼30년을 같이 보내야 하기기 때문에 부부가 서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남성은 권위주의적 문화를 버리고 여성들도 변화한 남성의 역할과 환경을 인정하고 노후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동수 기자



'부부관계'보다 진한 '돈'…"재산분할부터"━


[이혼, '쩐'의 전쟁④] 빚 때문에 이혼 못하거나 일부러 이혼하기도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기자
#주부 김모씨(55)는 10년간 이어진 남편의 폭언과 알코올 중독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집을 나왔다. 친척 집에 얹혀살며 이혼을 준비 중이지만 막막하기만 하다. 신용불량자였던 남편이 김씨 이름으로 빌린 빚 1억원 때문이다. 남편이 조금씩 갚고 있지만 이혼 후에는 김씨 혼자 부담할까봐 걱정이 앞선다. 유일한 재산인 부부 명의의 집을 팔고 싶어도 이혼을 원치 않는 남편이 거부하고 있다. 이대로 이혼했다간 집도 없이 빚만 떠 앉게 될 상황이다.

#건설업을 하던 박모씨(45)와 부인 최모씨(43)는 지난해 9월 원치 않는 이혼을 했다. 박씨가 사업을 하면서 빚 4억5000만원을 진 탓에 전 재산이 압류될 위기에 처해서다. 박씨는 남은 재산을 모두 최씨 명의로 돌려놓고 이혼 도장을 찍은 후 파산신청을 했다. 부부는 위장이혼 의심을 막기 위해 실제로 따로 살아야 했다.

이혼과 돈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이혼을 원하지만 돈 때문에 못 하거나, 원치 않지만 돈 때문에 이혼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혼을 문의해오는 의뢰인 대부분이 재산분할 고민을 가장 먼저 꺼낸다고 말한다.

재산이 너무 적거나 빚이 많은 부부에게 이혼은 생계를 뒤흔드는 일이다. 이현곤 새올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이혼을 하면 가정이 둘로 나뉘는 만큼 경제적 비용이 많이 든다"며 "분리된 가정이 모두 독립해서 살 만큼 형편이 안 되면 이혼 상담만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재산분할은 부부의 △각 당사자 명의 재산 △각 당사자 재산 형성 기여도 △혼인지속기간 등에 따라 분할 비율이 결정된다. 재산과 빚을 합한 총 재산을 기여도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다. 재산이 1억, 빚이 1억4000만원인 부부의 경우 총 자산은 빚(마이너스) 4000만원이다. 아내가 가정주부일 경우 기여도를 40%로 계산하면 이혼 후 아내 혼자 빚 1600만원을 책임져야 한다.

김씨처럼 배우자의 빚을 억울하게 부담했을 경우 빚을 지게 된 이유를 상세히 밝혀야 한다. 양나래 법무법인 라온 변호사는 "이혼 후 억울하게 혼자 빚을 갚지 않으려면 소송 과정에서 채무 발생 경위와 대출금 사용 내역 등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는 배경에도 '돈'이 있다. 노년기에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부부의 혼인지속기간이 길어서 재산분할 비율도 커진다. 배우자의 (장래) 퇴직금과 퇴직연금도 재산분할 청구가 가능하다. 배우자가 근무하는 데 상대방 배우자의 기여가 인정된다면 부부쌍방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으로 인정된다.

재산이 너무 많아 이혼을 망설이는 경우도 있다. 재산 대부분이 각 당사자가 물려받은 상속재산이라면 재산분할을 많이 받을 수 없어서다. 조혜정 조혜정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상속재산은 20년차 부부가 이혼해도 3분의 1 이상 못 받는다"며 "이혼하려다가도 재산이 아까워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세금을 아끼기 위해 위장이혼을 하는 이들도 있다. 양도소득세 30억여원을 내지 않은 A씨는 이혼 후 전 부인에게 재산을 나눠준 탓에 세금 낼 돈이 없다며 버텨왔다. 하지만 이혼 뒤에도 부인과 함께 생활하다가 국세청에 덜미를 잡혀 집에 숨겨둔 현금 4억3000만원과 골드바 3개 등 총 4억5000만원을 압류당했다.

재산 압류을 피하거나 파산신청을 위한 위장이혼 사례도 흔하다. 한 사람 명의로 재산을 돌려놓고 이혼한 뒤 파산신청을 하는 식이다. 김숙기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장은 "경제적 상황이 안 좋을 때 이런 사례가 많이 발생한다"며 "하지만 위장이혼했다가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실제로 헤어지는 경우가 70~80%"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경제적 요인이 부부 관계에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며 "경제적 이유로 원치 않는 이혼을 했다 해도 부부간 친밀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다시 좋은 관계로 합쳐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영민 기자



"우리 엄마·아빠가 준 돈으로 신혼집 샀잖아"━


[이혼, 쩐'의 전쟁⑤] 이혼 전문 변호사들이 말하는 '최신 이혼 트랜드'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자신이 버는 돈보다 부모로부터 받는 상속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저서 ‘21세기 자본론’에서 이 같은 역사적 경향을 비판했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못 사는 시대가 온다는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의 소득보다 부모의 재산이 더욱 중요한 게 현실이다.

이는 이혼 트랜드의 변화로 이어졌다. 과거엔 이혼할 때 부부가 스스로 모은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가 관건이었다. 요즘엔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각각 얼마나 가져갈지가 핵심 쟁점이 됐다. 결혼할 때 부모로부터 많은 돈을 증여받은 쪽에서 이혼 재산분할 때 그만큼의 몫을 요구하면서다.

가사 전문 조혜정 변호사(조혜정법률사무소)는 “예전엔 수십억 재산을 가진 30~40대가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부모가 미리 재산을 증여하면서 거액을 물려 받은 금수저가 많다”며 “이들이 이혼을 할 땐 증여 재산을 나눌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고 말했다.

비단 ‘금수저’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집값과 전셋값이 뛰면서 부모의 도움없이 본인들만의 힘으로 신혼집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결혼 이후에도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경우 역시 적잖다. 부모가 대준 돈이 많을수록 결혼 생활에 대한 부모의 간섭은 커지기 마련이다. 이혼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혼 결정 과정에서도 부모의 영향력이 커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가사소송 전문 이현곤 변호사(새올 법률사무소)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양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부모의 입김이 클 수 밖에 없다”며 “부모가 먼저 나서서 이혼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최근 이혼의 또 다른 트랜드는 연금이다. 연금이 이혼시 재산분할 문제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4년 이미 지급이 시작된 퇴직연금도 이혼 때 재산분할 대상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공무원연금은 법 개정으로 2016년 1월부터 이혼시 배우자에게 분할되고 있다. 조 변호사는 “퇴직연금과 공무원연금 등이 이혼시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되면서 황혼이혼을 하려는 가정주부들이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전했다.

재산분할 비율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혼 재산분할 때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판례가 늘고 있다. 조 변호사는 “주부들도 최소한 재산의 40%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확립된 인식”이라며 “출산과 양육 등을 맡아온 주부들에게 많은 재산을 분할해 주는 쪽으로 판례가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읽어주는 MT리포트
이보라 기자



"7억 받으면 될 줄 알았는데"…이혼 후 복병들



[이혼, '쩐'의 전쟁⑥] 생활고로 유흥업소 나가고 심리적 고통에 극단적 선택도…

/삽화=이지혜 기자

# 40대 여성 A씨는 남편의 지속적인 외도와 경제적인 무능력으로 이혼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두 자녀를 데려왔다. 전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받기로 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수개월 아무 소식 없다가 겨우 월 30만원을 주는 일이 반복됐다. 나중엔 연락도 닿지 않았다.

A씨는 식당에 취업했다. 월 120만원을 받았다. 두 자녀를 키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결국 노래방 도우미로 나섰다.

#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50대 여성 B씨는 이혼하면서 전체 재산의 80%를 가져왔다. 부동산을 포함해 약 7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모두 성인이 된 두 자녀가 변수였다. 대학원 진학과 유학 등으로 계속 목돈이 필요했다. 재산분할로 받은 여윳돈 대부분을 자녀 학비에 사용했다. 자녀들은 아버지와 인연을 끊어 따로 학비를 받아낼 수도 없었다.

결국 B씨는 마지막 남은 집까지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 전 남편은 달랐다. 전문직이라 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바람 핀 여성과 재혼까지 했다.

이처럼 이혼 뒤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 어렵게 결심한 이혼이지만 또 다른 난관에 부딪힌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가장 많다.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재산분할을 받더라도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생활비가 없어 고생하는 식이다.

이혼 후 겪는 심리적인 어려움도 상당하다. 28일 서울에서 한 4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여성은 이혼 후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그녀는 의부증과 우울증을 앓았다. 수차례 외도를 한 전 남편에게서 받은 충격을 이혼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새 남편은 밤에 일하고 여성은 낮에 일했다.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달랐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아무 일이 없는데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했다. 전 남편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던 여성은 새 남편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그럴수록 더 괴로워졌다. 새 남편과는 작은 갈등도 해결할 수 없어졌다. 사소한 말다툼이 불씨가 됐다. 극단적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재혼 1년 만이었다.

이혼 후 경제적인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해서 다양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이혼 후 생활고를 겪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혼 후 부양제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이혼 생활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이혼한 배우자가 부양료를 지급하는 제도"라고 밝혔다.

7년 간 법원의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한 최강현 부부행복연구원 원장은 "자녀를 키워야 하는 사람들은 이혼 후 더욱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양육비 지급 이행을 돕는 '양육비 이행 관리원'이 있지만 강제조치 수단이 부족해 실효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혼 후 대인관계나 갈등 해소를 위한 교육과 심리 치료도 필요하다. 이병철 차별없는가정을위한시민연합 대표는 "갈등 해결 능력이 부족한 분일수록 오히려 도움받기 싫어하고 정신과 등 전문 치료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혼 후 심리적 문제는 반드시 주변이나 전문 기관에 의뢰해 도움을 받아야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방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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