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만 걷자! 퇴계 이황의 ‘매화 엔딩’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 2018.04.08 07:07

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80 – 이황 : 대학자의 애틋한 멜로드라마


“뜰을 거닐자 달이 사람을 따라오네 / 매화나무 가장자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가 /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남을 잊었더니 / 향은 옷에 가득 꽃 그림자는 몸에 가득 / 늦게 핀 매화의 참뜻을 새삼 알겠구나.”

도산의 달 밝은 밤, 매화를 노래한 이 남자는 누굴까? 그는 왜 잠 못 이룬 채 매화나무 주위를 서성였을까? 봄날에는 꽃만 잔뜩 피는 게 아니다. 봄바람 살랑이면 도처에 사랑이 피어난다. 저마다 수줍은 연심을 품고 꽃길을 걷는다. 오늘날 흩날리는 벚꽃 아래서 떨리는 손을 잡듯이, 조선시대에는 낯을 붉히며 매화를 바라봤다. 이 남자, 퇴계 이황도 그랬다.

이황은 천원권 지폐의 모델로 쓰일 만큼 유명하지만 사극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16세기에 주자를 깊이 연구해 학문을 이루고 심성을 닦았다. 덕분에 선비들의 멘토로 떠오르며 사림이 집권하는 길을 열었다. 이황의 주자학은 조선을 성리학이 지배하는 나라로 이끌었고, 그의 도덕은 지금까지 한국인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황의 이런 모습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거나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에서 퇴계는 설명해야 할 인물이지 이야기꺼리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황은 앞으로도 사극 주인공이 되기는 글러먹은 것일까? 하지만 정사와 야사를 두루 살피고 약간의 상상을 보태면 그의 삶에 의외의 ‘멜로드라마’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황의 한시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를 다시 한 번 음미해보자. 달 밝은 밤에 매화나무 가장자리를 돌고 그 꽃의 향기와 그림자에 사로잡힌 퇴계에게서 연모의 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늦게 핀 매화의 참뜻은 과연 무엇일까? 설화집 ‘기문총화(記聞叢話)’에 나오는 그이와 두향의 일화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매화를 정표로 삼은 사랑 이야기다.

1548년 정월 이황은 단양군수로 부임했는데 이곳에서 관기 두향을 만났다. 두향은 신임 군수의 학문과 인품을 흠모한 나머지 금세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흔히 지방수령과 관기의 애정은 색안경을 끼고 보기 쉽다. 여기에는 기생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한다. 술자리의 흥을 돋우는 여인이라 하여 그들의 사랑을 욕정으로만 치부하는 시각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기생은 ‘배운 여자’였다. 장악원이나 교방에서 가무와 악기, 나아가 시문까지 익힌 풍류 전문가였다. 신분이 천하다고 마냥 헤프게 보는 것은 부당하다. 비록 웃음과 재주를 팔지언정 마음은 함부로 주지 않았다.

이황에게 마음을 빼앗긴 두향은 적극적으로 호의를 표시했다. 두향은 거문고에 능하고 시를 잘 짓는 기생이었다. 풍류를 즐기는 선비라면 외면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퇴계는 두향의 애정공세에 무심했다. 흐트러짐 없는 유학자의 품격을 드러낸 것이다. 이때 그의 마음을 연 무기가 바로 매화였다.

두향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유품으로 남긴 매화 화분을 이황에게 선물했다. 혈육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담긴 선물에 퇴계는 두향에게 친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동병상련(同病相憐)! 그이에게도 얼마 전 가슴에 묻은 소중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2년 전에 운명한 ‘바보 아내’ 권씨였다.

이황은 21세에 첫 장가를 들었으나 일찍 상처했다. 권씨 부인은 그가 30대에 맞이한 후처였다. 예안에 유배 온 권질이 딸을 맡긴 것이다. 이 집안은 갑자사화(1504), 기묘사화(1519), 신사무옥(1521)에 잇달아 엮여 풍비박산 났다. 그 충격으로 권질의 딸마저 정신을 놓았다. 퇴계는 온전치도 않고 의지할 데도 없는 권씨를 거두고 애정을 쏟았다.

바보 아내가 사고를 쳐도 든든한 방패막이가 돼주었다. 한번은 집안 제사를 지내다가 배 한 알이 굴러 떨어졌는데 권씨 부인이 주워 치마 속에 감췄다고 한다. 어른들이 째려보자 이황은 조용히 권씨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부인은 그냥 먹고 싶었다며 입맛을 다셨다. 이황은 지긋이 쳐다보다가 손수 배를 깎아서 먹기 좋게 잘랐다. 바보 아내는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해맑게 웃지 않았을까.

1546년 권씨 부인이 뒤늦게 출산하다가 죽자, 이황은 자기 탓이라며 크게 슬퍼했다. 그는 관직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도산 기슭에 암자를 짓고 날마다 건너편에 있는 아내의 무덤을 바라봤다. 그 아픔을 달래준 것은 도산 골짜기를 흐르는 자그마한 시내였다. 이황은 개천 이름 ‘토계(兎溪)’를 ‘퇴계(退溪)’로 고쳐 자신의 호로 삼았다.

이윽고 관직에 복귀한 이황에게 두향의 구애는 곤혹스러웠지만, 매화에 얽힌 아픈 사연을 듣는 순간 기꺼이 마음을 열었다. 두 사람은 단양팔경에 거문고 가락과 시의 운율을 실으며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봄날의 연심을 품고 꽃길을 걸은 것이다.

그러나 이 특별한 인연은 1548년 10월 이황이 풍기군수로 전임하면서 짧게 끝나고 만다. 아쉽게도 해후는 없었다. 그 후 퇴계는 도산에서 학문을 이루며 사림의 큰 스승이 되었는데, 두향은 정인에게 누를 끼칠까봐 관기를 그만두고 초막에서 수절했다. 이황도 두향을 잊지 않았다. 다음은 1552년 두향에게 띄운 편지에 적은 시다.

‘책 속에서 성현을 마주하고 / 빈 방에 초연히 앉았노라 /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 다시 보니 / 거문고 줄 끊겼다 한탄하지 않으리.’

빛은 어둠 속에서 광채를 내뿜고, 말은 침묵 속에서 가치를 더한다. 그리고 사랑은 그리움 속에서 더욱 애틋해진다. 1570년 12월 8일 이황은 평소 아끼던 매화에 물을 주라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두향은 자신의 초막에서 삼년상을 치른 다음 정인을 따라갔다. 이황과 두향의 ‘매화 엔딩’이다. 오늘날 도산서원엔 봄마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다.
권경률 기고가(사극속 역사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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