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 웃지 않는 여자

서지연 ize 기자 | 2018.04.04 09:03
레드벨벳의 ‘Bad Boy’는 제목과는 달리, 나쁜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무심한 표정과 관심 없는 말투’를 가진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그리고 무대 가운데에 선 아이린은 그 남자보다 우위에 있는 여성을 연기한다. 살짝 눈썹을 들어 올리거나 눈을 내리까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고, ‘bad boy down’이라는 가사에서 두 팔을 들어 아래를 가리키는 안무를 할 때는 위압적인 느낌까지 준다.

레드벨벳이 지난해 발표한 앨범 ‘The Perfect Red Velvet’과 ‘Perfect Velvet’은 그들이 꾸준히 추구해왔던 ‘벨벳’과 ‘레드’라는 콘셉트가 비로소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음을 보여준 앨범이었다. 각 앨범의 타이틀곡 ‘Bad Boy’와 ‘피카부’의 무대에서 아이린은 인상적인 엔딩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단순히 압도적인 비주얼 때문만은 아니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웃을 때조차 어딘지 서늘한 기운을 내뿜는 아이린의 얼굴은 기묘하지만 아름다운 레드벨벳만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몫을 했다. 걸그룹으로서 이런 매력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아이린만 해도 2014년 ‘행복’으로 데뷔했을 당시 신인 걸그룹이 으레 그렇듯 발랄한 모습을 보여줬고, 대구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투리 애교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이린은 무대 밖에서 감정 표현을 거의 안 내보이는 편이지만, 미디어는 그를 비롯한 여성 연예인에게 마치 애교를 맡겨놓은 것처럼 요구한다. MBC ‘오빠생각’에서는 “무표정으로 인사를 했다”는 탁재훈의 지적에 다시 인사를 해야 하기까지 했다. 좀처럼 웃지 않는 아이린의 표정이 그의 캐릭터 중 하나가 된 것은 이런 일들을 겪으며 얻은 것이기도 하다. JTBC ‘아는 형님’에서 김희철이 “야, 다려봐”라며 겉옷을 벗어 던졌을 때, 아이린은 표정 변화 없이 옷을 돌려줬다.

MBC ‘라디오스타’에서는 MC들이 요구하는 개인기를 잘 못 한다는 이유로 방송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하지만 당시 아이린은 토크에 불성실했던 것이 아니라, 애교나 개인기를 잘 못 한다고 했을 뿐이다. 반면 oksusu의 웹 예능 ‘레벨업 프로젝트’에서는 통영 여행에서 혼자 숙소 근처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너무 좋고 예쁘다는 말을 반복하며 기분 좋게 웃기도 한다. 웃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웃어야 하는 것을 하지 않을 뿐이다.


아이린은 모바일 게임 ‘반지’ CF에서 애교스럽게 “반지!”를 외쳤고, ‘맥스웰하우스 콜롬비아나’ CF에서는 이른바 ‘현실 여사친’을 연기하기도 했다. 각본이 준비된, 이른바 ‘비즈니스’에서 아이린은 자신이 약속한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맥락 없이 애교나 웃음을 원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방식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레드벨벳의 색깔과 결합해 지금 걸그룹 시장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팀이 됐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이 아이돌 그룹의 가운데에, 웃지 않는 아이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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