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멈춤' 한국, 규제가 일자리도 막았다

머니투데이 세종=양영권 기자 | 2018.04.03 04:33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조건] 규제완화만으로 22만개 일자리 만든다

사진=테크시티 홈페이지

# 영국 런던의 동부지역 올드 스트리트와 올림픽 주경기장 일대는 버려진 공장이 즐비하고 범죄가 끊이지 않는 슬럼가였다. 2000년대 들어 싼 임대료를 보고 스타트업기업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010년 '테크시티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의 메카로 떠올랐다. 2008년 15개에 불과하던 입주 기업은 현재 5000개 이상이다.

테크시티에서도 가장 두각을 보이는 산업은 핀테크(금융·기술)다. 2015년 기준 이곳의 핀테크 취업자 수는 4만4000 명. 미국 뉴욕의 핀테크 취업자 수(4만3000명)을 넘어섰다. 영국 전체로는 핀테크 산업이 2015년 한해 동안 6만명 고용을 창출했다.

◇ '감시'에서 '협력'으로, 규제당국의 변화 = 영국에서 핀테크 산업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규제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기 때문이다.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라는 것도 이 과정에서 등장했다. 금융행위 감독기구(FCA)가 2016년 5월부터 핀테크 기업이 혁신적인 새로운 금융서비스 상품을 규제에 제한받지 않고 일정 기간 테스트해 볼 수 있도록 한 것. FCA는 또 핀테크 사업 지원을 전담하는 부서인 이노베이션 허브(Innovation Hub)를 만들어 핀테크 기업이 복잡한 금융규제를 쉽게 이해하고 새로운 상품의 출시를 위한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일반적으로 금융당국은 기업들의 불법 행위를 감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지만 FCA는 혁신적 핀테크 기업의 성장을 직접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규제 당국과 기업이 협력체계를 구축해 핀테크 기업의 시장 진출을 촉진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얻을 수 있어 효율적인 모니터링과 제도적 개선이 가능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핀테크 산업은 초라하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금융권 종사자 28만 명 가운데 핀테크 인력은 0.2%인 578 명에 불과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핀테크는 규제가 완화되고 산업간 융합화가 활성화할 경우 2030년까지 8만8000 개의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예상되는 유망한 분야다. 하지만 전자금융거래법이나 여신전문업법 등에 따른 폐쇄적인 규제체계가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고 있다. 비밀번호, 공인인증서, 보안카드 등 각종 절차를 거쳐야 하는 탓에 소비자의 핀테크 이용률도 낮다. EY한영에 따르면 한국 핀테크 소비자 이용률은 33%로 중국(69%)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 기술 확보하고도 규제에 사업화 막혀 =규제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분야는 평창 동계올림픽 때 '오륜기' 시연을 하면서 화제가 된 드론 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드론 군집비행기술을 이미 2013년 개발했다. 앞서 2012년엔 수직 착륙 무인기 기술도 세계에서 둘째로 확보했다. 하지만 국내 드론 업체 가운데 이익을 내는 업체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해외 부품을 국내에서 조립해 판매하는 수준에 그친다. 항공안전법상 각종 규제가 사업화를 가로막았다. 사고가 나면 그때 규제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펴는 중국과 대비된다. 중국은 드론 생산에서 세계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중 80%를 수출한다.


이밖에 원격의료 분야도 관련 규제가 풀릴 경우 향후 5년간 만들어질 일자리가 2만2000개에 달할 것으로 한국경제연구원은 보고 있다. 이 연구원이 올 초 발표한 한국의 '규제 자유도'는 7.15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국 가운데 23위다. 우리와 산업 구조가 비슷한 독일 정도만 규제 자유도가 올라갈 경우 일자리가 22만1000개 새로 생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최근 청년 일자리 대책을 발표하면서 2021년까지 만들겠다고 일자리도 22만 개다. 예산 투입 없이 제도 개선만으로 늘어나는 청년 인구에 대응하는 지속성 있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여당도 규제 완화 없이는 신산업 활성화도 어렵다고 보고 뒤늦게 의욕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초 발의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도 그 중 하나다. 개정안은 신기술 활용 신서비스·제품 관련 규제 방식으로 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을 명문화하고 규제 정비 전이라도 필요한 경우 규제를 탄력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얼마나 빠른 속도로 개선이 이뤄지느냐다. 김종기 산업연구원 신산업연구실장은 "규제 때문에 인증 등의 절차가 늦어질 경우 시장 출시가 늦어지고 그만큼 필요한 연관산업의 일자리도 생기지 않는다"며 "신산업에서 합리적으로 규제를 정비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광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경제가 압축성장을 할 때는 정부가 수직적으로 조밀한 규제를 펴는 게 효율적이었지만 융합이 일상화된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규제 체계간 충돌이 벌어지게 된다"며 "규제의 체질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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