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 일부 공공기관과 시민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의 '나침반'이다. 직선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게 유도하는 '선형블록'과 장애물이나 위험지역을 경고하는 '점형블록'으로 나뉜다. 점자블록이 없거나 훼손된 도로에서는 시각장애인이 방향감각을 상실하기 때문에 혼자 이동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민들의 출입이 빈번한 주민센터의 경우 점자블록 시설이 특히 열악하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서울시 소재 주민센터의 점자블록 부적정 설치 및 미설치율이 75.4%에 달했다. 서울시를 제외한 9개 시·도 324개 주민센터의 점자블록 부적절 설치 및 미설치 비율은 77.9%였다.
16일 머니투데이가 확인한 결과 실제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의 경우 점자블록이 설치된 문만 닫아놓았다.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출입구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강북구청 본관 앞은 카펫이 점자블록을 덮었고, 구청 민원실 내부에는 설치된 점자블록 위에 이동식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출입구 앞도 카펫이 점자블록을 덮었다.
이창현씨는 "블록이 깔려 있는 부분만 시각장애인이 자의적으로 통행할 수 있다"며 "블록이 잘못됐다고 느끼면 상당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만? 길거리도 마찬가지
대중교통 시설과 보도 등에 설치된 점자블록 또한 관리가 취약해 통행에 불편을 주기도 한다.
1호선 시청역 지하상가 연결통로에 설치된 한 점자블록은 사람이 통행할 수 없는 벽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과거 사용하던 출입문을 막았지만 점자블록은 '업데이트'하지 않은 까닭이다. 서울 도심 종로에서는 일부 점자블록이 닳거나 깨졌지만 보수·교체 작업을 하지 않아 의미를 알 수 없는 형태로 점자블록이 배치된 경우도 있었다.
시각장애인 나나라씨는 "점자블록 위 노점상과 주차된 차량 때문에 애를 먹는다"며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이 길을 잘 찾게 도와주는 '단서'인데, 시각장애인을 위해 설치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불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무지'와 '무관심'의 사이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블록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이유로 '무지'와 '무관심'을 꼽는다. 위의 시민청 점자블록 사례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시민청 관계자는 "천장누수 때문에 4~5일 전부터 닫았다"고 해명했지만 해당 출입문은 그 전부터 닫혀 있었다.
이창현씨는 "심지어 점자블록을 설치하는 분들 중에서 점자블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모르고 설치해 방향이 잘못된 경우도 있다"며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나아가 정책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장애인연합회에서 점자블록 시정 요청을 하더라도 공공기관에선 검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홍서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편의시설지원센터 연구원은 "공공건물 내 점자블록 문제는 상위 공공기관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설치만이 능사가 아니라 관리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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