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파운드에 팔린 조선 의궤' 120여년만에 빛보다

머니투데이 문봉석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 2018.03.31 05:00

[기고]국립국악원 문봉석 학예연구사 '국악을 후대에 온전히 물려주는 해외 국악 유물 찾기'

최근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은 국악학 관련 중요 고문헌을 연구자와 일반 대중에게 제공할 목적으로 '한국음악학학술총서 11집: 역주 기사진표리진찬의궤'를 발간했다. 필자가 해당 문헌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17년 2월의 일이다.

당시 국제학술회의 참석 및 SOAS 런던대학교와 MOU 체결 업무로 영국 출장을 계획하던 중 해당 대학의 키스 하워드 교수로부터 영국국립도서관(British Library)에 의궤가 소장되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해당 문헌은 1809년에 순조(純祖)가 그의 할머니인 혜경궁(1735~1815)의 관례(성인의식) 6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왕실에서 옷감과 음식을 올린 행사를 기록한 의궤이다. 당시 제작은 규장각에서 담당했고, 어람용으로 2부가 제작되어 혜경궁과 순조에게 각각 진상되었다. 이후 19세기 중반에 외규장각으로 옮겨져 보관되었는데, 불행히도 1866년 병인양요 때 한 권은 불타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한 권이 현재 영국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도서관 측은 이것을 1891년 10월 24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10파운드(현재 1파운드는 한화로 1500여원)에 구입했다고 한다.

이 의궤의 학술적 가치는 대단해 보였다. 지금까지 발굴된 진찬의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고, 진표리(옷의 겉감과 안감을 올리는 일)와 진찬(국가의 큰 경사를 맞아 거행되는 궁중 잔치)을 함께 담고 있는 유일한 의궤이다. 또한 천연색으로 입체감 있게 묘사된 도식은 여러 의궤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궁중 악대의 연주모습과 악기의 묘사가 세밀하여, 국악학에서 관심이 있는 궁중음악의 복원 및 재현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영국 소장 문헌을 국내에서 이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수집이 필요해 보였다. 자료 수집의 1차 목표는 실물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료는 현재 엄연히 영국국립도서관의 자산이고, 이를 환수하는 것은 외교적인 사안으로 볼 만큼 어려운 문제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최소한 국내에서 해당 자료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원 자료의 사본을 확보하는 것이 차선의 목표가 된다.

영국국립도서관 측에 문의한 결과, 의궤의 고화질 촬영본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사진을 제공 받으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재를 이런 방식으로 국내에 소개하고 싶지는 않았다. 서둘러 영국 출장을 준비했다.

영국국립도서관을 방문하여 의궤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이용을 위해 고화질 촬영본의 무상 제공과 저작권 이용허락을 요청했다. 영국국립도서관 측은 이와 같은 사례가 처음이라 당장은 어렵지만, 국악원이 직접 방문하여 요청해온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조속한 시일 내에 내부 논의를 거쳐 협조하겠다는 희망적인 약속을 했다.


귀국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영국으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했다. 한국과 영국의 두 국가 기관 간에 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의궤의 고화질 촬영본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비록 저작물의 이용권까지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별도의 처리 규정을 마련하면서까지 협조해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사진 자료를 확보한 마당에 국내 소개를 미룰 필요가 없었다.

영국국립도서관에서 제공 받은 고화질 촬영본과 함께 번역문과 주석 등을 추가하여 국악원이 1991년부터 발간해온 한국음악학술총서시리즈로 출판하기로 했다. 번역문과 해제는 문화재청의 ‘2014년 중요기록유산 국역 사업’ 결과물을 수록했고, 영국국립도서관을 비롯한 해외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영문 소개 글도 추가해 한 권의 책으로 발간했다. 국내외 여러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더 값진 책자가 완성됐다.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의 소중한 국악 유물들이 아직도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피바디에섹스 박물관에는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에 출품했던 9점의 국악기가, 프랑스음악박물관에는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 출품 11점의 국악기가 국내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국립국악원은 공연장의 화려한 조명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을 지라도, 낯선 이국땅에서 흩어져 있는 우리 음악 유물을 찾아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문봉석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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