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고객님~"… 나는 미세먼지를 참는다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 2018.04.01 05:02

[미세먼지 무방비 지대-②]마스크 못 쓰는 야외 서비스노동자들… "소비자들 인식 바꿔야"

편집자주 | '1급 발암물질'이라며 온 국민이 난립니다. 미세먼지 말입니다. 화학전(戰)도 아니고 방독면을 쓴다는 게 웬 말입니까. 정말 심각하긴 한가 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 마스크도 못 쓰는 '무방비 지대'가 있습니다. 몰라서 못 쓰고, 알아도 못 쓰고, 동물이라서 못 쓰고, 군인이라서 못 쓴답니다. 일요일엔 빨간날, 이번주 주제는 '미세먼지 무방비지대'입니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이었던 28일 오전, 서울시 중구 명동의 화장품 로드샵 가게들 앞에서 직원들이 관광객을 유인하고 있다. 마스크를 낀 직원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진=이재은 기자
미세먼지가 나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마스크를 못 쓰는 이들이 있다. 얼굴을 마주보고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이다. 고객들과 대화하기 불편해서, 목소리가 작아져서 마스크를 벗고 일한다. 이들이 유일하게 쓸 수 있는 것은 '스마일 마스크'(웃는 얼굴)뿐이다.

◇"구경해보세요~"…고객 유치 경쟁에 미세먼지 고민은 뒷전
전국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이었던 28일 오전, 서울시민 대부분은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서울형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뒤라 경각심이 커진 때였다. 하지만 고객들에게 큰 목소리로 말하고 밝은 모습으로 상대해야 하는 야외 서비스 노동자들의 경우 마스크 쓴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이날 오전 9시30분, 중구 명동의 화장품 로드샵들은 제각기 문을 활짝 열고 아침 일찍 나온 관광객을 맞았다. 로드샵 앞에는 고객들에게 마스크팩을 나눠주며 매장으로 유인하는 직원들이 보였다.

30여개 넘는 매장을 두루 살펴봤지만 마스크를 쓴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4호선 명동역 앞, 한 로드샵 앞 직원에게 "왜 마스크를 쓰지 않냐"고 묻자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옆 가게들과 경쟁이 심해 큰 소리로 유인해야 한다"며 "마스크를 끼면 목소리가 묻혀 낄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그는 손에 쥔 팩을 고객들에게 나눠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세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식당 전단지를 나눠주던 A씨의 사정도 비슷했다. A씨는 "미세먼지가 많이 걱정된다"며 "밖에서 1시간만 일해도 목이 컬컬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의 특성상 마스크를 낄 수 없으니 어쩌겠냐. 출·퇴근 때만 미세먼지 마스크를 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이었던 28일 오전, 서울시 광진구의 백화점 주차장 입구에서 직원이 안내하고 있다. 그는 회사에서 지급받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사진=이재은 기자
◇"친밀하게 응대하려면"… 착용 권고에도 끼지 못하는 마스크
사정이 이렇지만 정부의 규정은 느슨하기만 하다. 현행법상 미세먼지로부터 야외 노동자를 보호하는 규정은 지난해 12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른 마스크 지급 의무 밖에 없다. 그마저도 '미세먼지 경보'가 내렸을 때 뿐이다.

하지만 마스크를 지급받거나 권유받았음에도 착용 못하는 것이 서비스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이날 오전 광진구 롯데백화점 건대 스타시티점에서 주차 안내를 하던 직원 B씨는 회사로부터 마스크를 지급받았지만 착용하지 않았다. B씨는 "고객들한테 안내를 해야 하는데 말을 할 때마다 벗고 쓰다보니 불편해서 그냥 벗어버렸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이었던 28일 오전, 서울시 광진구의 어린이대공원 놀이동산에서 한 운행직원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근무하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연이어 찾은 어린이대공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원 정문을 지키는 안내원 C씨는 길을 묻는 사람이 많아 지급받은 마스크를 벗어놨다고 답했다. 놀이동산에 있던 직원도 "놀이기구가 출발한다는 안내 멘트를 할 때나, 손님들을 밝게 맞을 때마다 벗게 돼 아예 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놀이기구 운행직원 7명 중 마스크를 착용한 이는 1명뿐이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서비스 노동자도 불편해보이긴 마찬가지였다. 명동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관광안내소 관광통역안내사들은 권고에 따라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관광객들이 말을 걸면 마스크를 내리고 대답했다. 관광안내소 관계자는 "외국인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가려다보니 마스크를 내리고 대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이었던 28일 오전, 서울시 중구 명동에서 관광통역안내사들이 관광객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이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가도 관광객이 다가오면 내리고 안내했다. /사진=이재은 기자
중구 롯데호텔 서울 주차요원들도 회사가 배부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사측 권고에 따라 손님을 응대할 때는 벗고 대답했다. 호텔 관계자는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고 있으면 응대서비스에 어려움이 생기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1급 발암물질' 미세먼지… "착용 권장하고 소비자 인식 개선돼야"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미세먼지 가이드라인'에 야외 노동자들도 마스크 착용을 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이는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을 정부에 주문하는 한편 서비스직도 마스크를 쓸 수 있는 사회 분위기·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마스크 착용을 권장해야 한다"면서도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고 있으면 호흡이 곤란해지는 등 무리가 있어 근본적 해결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 시행을 주문하면서 "미세먼지 농도가 나쁠 경우 야외 근무시간을 줄이고 휴식시간을 늘리거나, 야외서비스 노동자가 많은 번화가는 특히 공회전을 강력 단속하는 등 세부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장 등의 유해물질 배출원을 규제하고 차량 2부제를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등 미세먼지 발생원 자체를 줄이려는 노력도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식 변화도 필수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비스 노동자들의 역할이나 규범,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하면 노동자들은 상사나 고객들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근무환경이나 여건을 바꾸는 동시에 소비자들도 '서비스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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