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교수·변호사·관료 출신 사외이사만 '수두룩'

머니투데이 이학렬 기자 | 2018.03.19 04:01

[사외이사, 그들만의 세상-8] 4대그룹 대표 상장사 사외이사 23명 중 기업인 출신 단 1명

편집자주 | 본격적인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기업마다 사외이사 물갈이가 한창이다.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에 암투가 벌어지는가 하면 노골적인 청탁이 오고 가기도 한다. 기업 경영의 한 축이라는 본연의 기능보다는 은퇴한 유력인사들의 '인생3모작', 혹은 현직들의 '꿀 부업'이라는 매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때론 권력에 대한 방패막이, 혹은 기업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되기도 한다. 사외이사 세계의 현실과, 개선 가능성을 짚어본다.

교수 등 학계, 법조계, 전직 관료 출신이 사외이사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업인 출신 사외이사는 소수에 불과했다. 사외이사 후보군이 다양하지 않다보니 한 명이 여러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맡는 '겹치기' 사외이사, 여러 기업을 돌아가면서 사외이사를 하는 '회전문' 사외이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 대표 상장회사의 사외이사 23명 중 학계, 법조계, 전직 관료 출신이 아닌 사외이사는 이인호 전 신한은행장(삼성전자), 하금열 전 SBS 사장(SK), 이장규 전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대표(LG), 최상태 전 삼일회계법인 부대표(LG) 등 4명에 불과하다.

금융지주회사도 비슷하다. KB·신한·하나·NH농협금융 등 4대 금융지주회사 사외이사 28명 중 절반이 넘는 15명이 학계, 법조계, 전직 관료 출신이다. 재일동포 주주 영향으로 금융인과 기업가 출신이 많은 신한금융을 빼면 학계, 법조계, 전직 관료 출신 비중은 더욱 높아진다.

반면 기업인 출신은 거의 없다. 4대 그룹 대표 상장회사 사외이사에서 언론인 출신인 이장규·하금열 사외이사를 빼면 기업 경험을 가진 사외이사는 은행원으로 활동했던 이인호 사외이사뿐이다. 금융지주회사 사외이사 중에서도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 기업 출신 사외이사는 신한금융의 재일동포 추천 사외이사뿐이다.

이는 글로벌 회사와 대조된다. 애플은 사외이사 7명 중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을 빼면 모두 기업인 출신이다. 심지어 로버트 아이거 월트디즈니 회장 등 현직 경영진도 3명 포함돼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대부분 글로벌 기업도 기업인 출신 사외이사가 많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4월까지 FCA(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의 지주회사인 엑소르(EXOR N.V) 사외이사를 맡아온 것은 글로벌 기업이 다른 기업 C레벨 경영진을 사외이사로 두고 있음을 보여준 예다.

기업들이 법조계, 전직 관료 출신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건 해당 분야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외풍을 막아줄 바람막이 역할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회사나 정부 영향력이 큰 기업들은 친정부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해 논란이 일기도 한다.

KT는 이강철 전 대통령비시설 시민사회수석비서관과 김대유 전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등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추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문재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박병대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와 박시환 전 대법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KB금융은 선우석호 서울대 객원교수와 정구환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모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같은 경기고 출신이다. KEB하나은행의 황덕남 사외이사는 참여정부 시절 법무비서관을 지냈다.


반면 기업인 출신은 영업비밀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기업이 꺼리기도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 금융회사는 대출 등으로 엮여있기 때문에 기업인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기가 어렵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은 중요한 거래관계가 있거나 사업상 경쟁관계 또는 협력관계에 있는 임직원을 금융회사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외이사 후보군이 제한되다보니 한 사외이사가 여러 기업 사외이사를 동시에 맡는 경우가 생긴다. 삼성전자의 송광수 사외이사와 박재완 사외이사는 각각 두산과 롯데쇼핑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이동규 사외이사와 이병국 사외이사는 각각 오리콤, LS산전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여러 기업을 돌아가며 사외이사를 맡고 경우도 있다. 정영록 KEB하나은행 사외이사는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추천받았다. 김인배 하나금융 사외이사는 KEB하나은행 사외이사로, 반대로 허윤 KEB하나은행 사외이사는 하나금융지주로 자리를 맞바꾸기도 한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위원은 "다른 기업 출신을 영입하는 문화가 없다보니 이해도가 높은 같은 업권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경우도 드물다"며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사외이사의 임기가 끝나면 여러 기업이 사외이사로 영입하려고 경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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